‘정의당 재창당’ 마술은 없다…다시 지역·민생으로
“자기 힘 없이 외부의 힘에 기대 우리가 살아날 길은 없습니다.”
지난 11일 저녁, 전남 목포시의 한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열린 전남 지역 당원 간담회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연이은 패배, 3~4%에 고착된 당 지지율,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정치력 등 총체적 위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정의당의 ‘자강’을 호소하는 목소리였다. “지금 우리가 미약해 보이고 능력 없어 보여도 패배감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진짜 잘해왔던 것, 우리가 갖고 있는 강점에 기초해서 스스로 강해지려는 노력을 우선 해야 합니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재창당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17개 시·도를 돌며 당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민생 현장을 찾아가 답답한 처지를 호소하는 시민들도 만났다. 지난해 9월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재창당 결의안의 후속 작업이다. 이 대표는 결의안을 바탕으로 지역·당원과 노동이라는 전통적 지지 기반을 재건하고, 기후변화 등 ‘녹색’ 이슈로 당의 저변을 넓혀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지난 11일 목포에서 당원들을 만난 이 대표는 <한겨레>에 “이번 ‘17개 시·도 대장정’을 통해 지역에서 정의당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도당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조직이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를 만나, 이들의 요구에 따라 대구 등 다른 지역 피해자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줬다. 또 피해자를 지원하는 ‘깡통전세 공공매입 특별법’을 지난달 30일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이 대표가 ‘자강’을 통한 재창당을 표방하는 이유는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 대표는 “당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답을 줘야 한다”며 “정의당의 기반을 강화하려면 결국 초심인 ‘일하는 사람의 정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작동한다. 정의당에 절실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현하려고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잡았지만, 돌아온 건 ‘민주당 2중대’라는 당 안팎의 거센 비판이었다. 믿었던 민주당한테는 위성정당으로 비례의석을 대거 잃는 뒤통수를 맞았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태동부터 그랬듯, 민주당 등과 연합·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힘이 세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나, ‘쌍특검법’(‘50억 클럽’ 특검법,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등 특검법)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느냐를 두고 민주당과 이견을 보였던 것만 해도, 당원들 사이에선 반대 의견이 나왔다. 11일 <한겨레>와 만난 전남도당 관계자는 “돌아가신 노회찬 의원은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일본과도 손잡아서 싸워야 한다’고 했는데, 정의당은 왜 윤석열 정부와는 안 싸우고 민주당과 싸우느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정의당이 민주당의 쌍특검 요구를 거부한 뒤 탈당하거나 당비 납부를 거부한 당원만 1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 탓에 지난해 당대표 선거 직전 이정미 대표가 “더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답하느라 당력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선명한 제3정당”이 되겠다고 한 계획은 큰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정의당을 고쳐 쓰는 재창당’이 아니라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견그룹 ‘새진보연합’과 이동영 전 수석대변인은 ‘진보 깃발 아래 신당 창당’을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새진보연합은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을 넘어, 시민이 참여하는 대중정당을 표방한다. 이 전 수석대변인은 제3지대 연합정당 창당을 꺼내들었다.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이 꾸린 ‘세번째 권력’은 진보정치 청산을 기치로 삼아 ‘정의당 해체 뒤 신당 창당’을 주장한다. 당 밖에선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의당·진보당 등 진보정당이 모여 ‘총선연합용’ 신당을 만들자는 ‘진보대연합’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 18일 밤엔 재창당론을 포함해 당의 진로를 둘러싼 이런 다양한 주장을 놓고 당원들이 화상 토론을 벌였다.
정의당으로선, 그러잖아도 총선을 1년 앞두고 어떤 형태의 정계 개편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가 달갑지만은 않다.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의 기본적인 가치를 맞출 수 있다면, 새로운 정치세력과의 당 대 당 합당도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차분히 정의당이 자기 힘을 쌓아가고 체력을 기른 뒤에 좋은 후보를 낸다면, 총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의 한 관계자도 “지역과 민생 현장에서 바닥을 다지는 것 외에 다른 ‘재창당 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의 17개 시·도 대장정은 19일 저녁 서울 당원 간담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재창당추진위는 오는 25일 ‘재창당 공개 토론회’를 열어 지금까지 진행한 재창당 작업에 대한 당내 의견을 모은다. 이와 함께 정의당은 새달 20일 노동계와 함께 ‘노동정치 한마당’을 열 예정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의당의 지난 10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정의당은 거대 양당을 공격하면서 대안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왜 정의당이 대안이어야 하는지를 입증하지 못했다.” 정의당 재창당 결의안의 한 대목이다. 왜 정의당이어야 하는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할 차례다.
목포/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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