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2’ 작가 “실종자 가족에게도 힘 주고 싶어 ‘희망’ 담았죠”
자, 이제 “드라마 봐서 뭐하느냐”는 주변 얘기에 자신 있게 답하자. “이 또한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한 소중한 쉼”이라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주는 즐거움이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증명한다.
케이(K)드라마 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야기꾼 작가들이 상징적이다.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와 <괴물> 김수진 작가는 대본을 쓰다가 막히면 온라인 게임을 하고, <갯마을 차차차> 신하은 작가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 <빈센조> 박재범 작가는 글을 쓸 땐 항상 예능 프로그램을 켜놓는다. <지옥>을 집필한 연상호 작가이자 감독은 피규어를 조립한다. 머릿속을 새로운 ‘재미’로 덮은 뒤, 다시 ‘쓰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4월 ‘쉼톡’ 주인공도 드라마 보는 즐거움으로 힘든 순간을 견뎌 또 다른 드라마를 창작해 낸 이들이다. 실종자들을 끝까지 찾아내는 이야기로 현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가족한테 힘을 줬던 <미씽: 그들이 있었다> 시리즈를 공동 집필한 반기리·정소영 작가다. <미씽>은 작가로서 쓰는 고통 뒤에 오는 뿌듯함과 시청자로서 보는 즐거움을 모두 느끼게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드라마가 곧 업이자 쉼 <미씽>은 2020년 시즌1(오시엔·OCN) 인기에 힘입어 2022년 시즌2(티브이엔·tvN)를 선보였고, 지난 1월31일 끝났다. 두 작가는 일이 안 풀릴 때면 단호하게 접는다. ‘오늘은 그만하자’ 손을 놓은 뒤 각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한 가지가 더 있다. 반기리 작가의 복잡한 머릿속을 씻겨주는 건 드라마다. 그는 “너무 힘들 때는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주로 매회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에피소드 형식의 미드(미국드라마)를 보는데 너무 깊게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다”며 “드라마를 보는 순간이 나에게는 휴식”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업’인데 ‘쉼’이 될까? 그는 특히 판타지 드라마를 볼 때면 왠지 모를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왕좌의 게임>이나 영화 <스타워즈> 스핀오프 드라마처럼 대놓고 판타지를 내세운 세계관을 좋아해요. 전 현실 어딘가에 그런 곳이 진짜 있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은하철도 999>를 보면서 벽장 문을 열면 우주정거장이 나온다고 믿었던 것처럼, 판타지 공간이 실제로 존재할 거라는 기대감과 즐거움이 생긴다고 할까요? 어른들의 동화 같은 느낌이라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져요.”
두 작가는 <미씽>도 누군가한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썼다. <미씽>에는 주인공 김욱(고수)과 장판석(허준호)한테만 보이는 어떤 마을이 등장한다. 시즌1, 1화를 보는 내내 시청자도 김욱도 마을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1화 마지막, 주검이 발견됐다는 티브이 뉴스와 함께 장판석과 대화하던 남자가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망자들이 사는 마을로, 남자의 주검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발견된 것이다. <미씽>은 김욱과 장판석이 두 사람 눈에만 보이는 망자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실종자들을 끝까지 찾아 나선다.
정소영 작가는 “요즘은 실종수사대와 시민들이 에스엔에스(SNS)로 공유하는 등 많은 이들의 관심으로 실종자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실종된 지 오래된 미발견자의 수는 줄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오래된 미발견자들을 찾는 것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이 드라마를 10년 전에 기획했다. 반기리 작가는 “2010년 기획하면서 처음 조사했을 때와 2018년, 2020년 다시 준비하면서 알아봤을 때 미발견된 실종자 수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 드라마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해마다 경찰에 접수되는 실종신고는 성인 6만~7만여건, 18살 미만 아동 2만여건에 이른다. 2022년 7월31일 기준으로 최근 5년(2017~2021)간 미발견자는 모두 2185명이다.(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 참조)
실종자 가족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작가로서 쓰는 고통은 드라마로 시청자들이 위안을 받을 때 사라진다. 올해 <더 글로리> <모범택시>처럼 가해자들을 시원하는 응징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다. <미씽>은 현실의 실종자 가족들한테 힘을 줬다. 드라마 속 마을에는 100년 넘게 지내는 독립운동가(시즌1)도 살고, 믿었던 지인한테 살해당한 뒤 몇십년 째 사는 선장(시즌2)도 있다. 그들이 각 마을의 터줏대감처럼 지내며 새로운 망자를 맞고, 또 보내기도 한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온 이도 있고, 산에서 실족사했는데 그 사실을 누구도 몰라 오랫동안 사는 이도 있다.
실종자들의 다양한 사례는 대부분 취재를 통해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반기리 작가는 “과거 교양프로그램 작가를 할 때, 한 어린이 실종 사건을 다룬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또 한 번 아파할까, 대본을 쓰면서는 실제 사례가 떠오르지 않게 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에는 피해자의 환경 등 여러 상황을 변주해 담았다. ‘은희 선생’처럼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여러 번 소개되어 시청자들이 바로 유추 가능할 사례들도 있다. 정소영 작가는 “은희 선생님은 한 대학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지금도 아버지가 찾고 계신다. 끝까지 많은 분이 가족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두 작가는 시즌1에 견줘 시즌2에서 희망을 듬뿍 담았다. 장판석이 딸의 흔적을 찾고, 김욱이 실종자를 찾아내어 살리기도 한다. 산속에서 실족사해 오랫동안 외롭게 있던 로하는 마을 운동회를 하는 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주검이 발견되게 했다. 이들은 7회와 11회, 마지막 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의 바람까지 담은 결과물이다. “고수씨가 시즌1을 연기한 뒤 계속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가슴 아프다면서 실종자들을 찾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작가로서 뭘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실종자를 찾아 구하는 것으로 희망을 담았습니다.”(반기리)
서로 마음이 통한 걸까. 시즌2를 하면서는 제작진이 방송을 활용해 실제 실종아동을 찾는 방안을 고민했고, <티브이엔> 쪽에서 아동권리보장원(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에 연락해 실종아동찾기 캠페인도 했다. 방송이 끝난 뒤 실종아동 신고 번호(182)와 유전자 검사제도를 안내하고, 예고편에는 실종아동을 찾는 공지도 했다. 배우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제보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 채널도 운용했다. 드라마에서 이런 캠페인은 이례적이다. 정소영 작가는 “사실 전단지도 잘 안 보게 되잖아요.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라도 한명이라도 더 보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시사교양프로그램을 20년 넘게 한 두 작가는 “드라마가 사회를 반영하고 그래서 올바르게 변화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이다. 각자 따로 활동하는데 <미씽>을 할 때만 공동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씽>도 정소영 작가가 후배가 꾼 꿈을 만 원 주고 산 내용에서 출발해 실종자를 찾는 데 보탬이 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정소영 작가는 “꿈은 ‘어디에 갔는데 내 눈에만 보이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식이었다. 새벽에 바로 언니(반기리 작가)한테 연락해 만나 큰 줄거리를 잡아가면서 <미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둘은 2002년 처음 만나 2003년 <브이제이 특공대>를 하면서 일로도 호흡을 맞췄다.
구성작가 출신으로 사건 취재나 자료 찾는 데는 고수들. 3개월간 실종 관련 자료는 죄다 찾아보며 2010년 대본 4회와 기획안까지 만들었다. 반기리 작가가 드라마 <일지매> 보조 작가를 한 것 외에는 둘 다 단막 한편도 안 쓴 상태에서 빠르게 진행했다. 방송사 극본 공모 최종까지 갔지만 당선은 되지 않아 오래 묵혀둔 것이 10년 만에 빛을 봤다. 반기리 작가는 “당시만 해도 이런 내용이 잘 없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아이템을 다루는 드라마가 많아졌다. <미씽>도 이제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다시 꺼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드라마라는 매체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못 담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각자 따로 새 작품을 준비 중인데, 기회가 되면 <미씽> 시즌3도 다시 할 생각이다. “확정된 건 아닌데 우린 벌써 할 이야기가 산더미”라고 입을 모은다. 시즌2에서 “장판석이 아이를 만나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정소영), “아니 없어도 된다”(반기리)며 때론 의견이 갈렸지만, 서로를 잘 알아 존중하며 작업하다 보니 큰 갈등이 생긴 적은 없다고 한다. 작업도 다른 컴퓨터로 한글 파일에 함께 접속해 한 신을 같이 고치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공동 작업을 했다. 이 역시 흔치 않은 일이다. 정소영 작가는 ”언니가 양보해줘서”라고 하고, 반기리 작가는 “소영이가 져줘서”라고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깊게 느끼고 있는 같은 마음이 동력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망자들이 모인 마을이지만 정말 행복한 곳인데, 주검이 발견되어 사라지면 오히려 더 슬플 것 같다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장판석이 2회에서 (생사라도 확인된 걸 보고) 저렇게라도 품에 안은 게 부럽다고 하잖아요. 장판석은 현실에도 있어요. 그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잘 보듬어주지만, 그럼에도 실종자 가족들은 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만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그 바람이에요. 실종이니까. 생사만이라도 가족들이 알았으면 하니까. 생사만이라도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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