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차원 다른' 여행 목적지 멜버른 ③
(멜버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골드러시를 통해 멜버른으로 모여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이 지역에 정착해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다민족·다국적 음식과 음료들이 멜버른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게 된 연유다.
멜버른 시내를 다니다 보면 숱하게 많은 아시아계 음식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시아 각국에서 먹던 음식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미식의 도시 멜버른
미식이라고 하면 서양식 납작한 접시에 요리가 끝없이 나오는 코스요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그런 미식 문화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서구의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마음 편하게 식사한 기억이 적어도 나에게는 없다.
왼쪽 빵이 내 것인지, 오른쪽 물이 내 것인지를 신경 써야 한다.
수많은 포크와 나이프의 용도는 수십 년을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헷갈린다.
요리 또한 마찬가지다.
음식 본연의 맛보다는 뭔가 '창작성'에 더 목숨을 건 듯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장식들은 어딘지 거북하다.
멜버른에서는 그런 서양식 미식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미식을 만날 수 있다.
아시아계부터 이탈리아계까지 백그라운드도 다양하다.
멜버른 시내 플린더스 거리에 있는 '수퍼노말'(Supernormal)은 평범한 음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일깨워주는 식당이다.
도쿄, 상하이, 서울, 홍콩의 요리에 영감을 받아 호주식 건강한 음식 재료로 재탄생했다.
고전적인 요리들이 재조명되고 몇몇 인기 요리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다.
첫 번째로 맛본 것은 신선한 굴이었다.
특유의 소스에 찍어 먹는 굴은 개당 수천 원으로 비쌌지만, 매우 신선했다.
'뉴 잉글랜드 랍스터 롤'은 빵 사이에 랍스터 맛살이 들어가 있는 음식으로, 고소한 랍스터의 맛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XO소스로 맛을 낸 'XO 누들 샐러드'는 칼라마리가 동양적인 소스와 잘 어울렸다.
XO소스는 중국 음식에 매운맛을 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해산물 소스다.
동양 특유의 소스들은 마치 아시아 어느 나라의 현지 음식처럼 신선하고 생생했다.
멜버른이 가진 음식 포용성에 거듭 놀랐다.
멜버른에 있는 내내 음식으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음날 들렀던 중심부의 '하이어 그라운드'(Higher Ground) 또한 힙한 곳이었다.
붉은 벽돌로 만든 창고형 건물 내부는 드넓은 공간을 활용해 센스 있게 꾸며놓았다.
'인스타그래머블 플레이스'로 인기 높은 곳이다.
플린더스 레인 건너편에 있는 번화한 디그레이브스 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이곳은 멜버른 최초의 '차선 도로'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보행자 통로가 됐다.
파라솔 아래에서 음료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늘 붐빈다.
멜버른에서 커피를 빼놓을 수 있나
멜버른은 세계적인 커피 도시 가운데 하나다.
매년 바리스타 대회 우승자가 나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 도시다.
또한 커피에 있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인 바리스타들이 많이 활약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수백 명의 한국인 바리스타가 활약했다고 한다.
멜버른에서는 정말 많은 커피숍에 들렀다.
멜버른의 커피숍들은 대부분 오전 7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시민들이 아침 출근과 더불어 커피를 마시기 때문이다.
멜버른 커피는 '블랙, 화이트, 필터' 3가지 메뉴로 압축된다.
블랙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것이다.
그런데 아메리카노와 같은 커피라는 이야기를 듣고 '롱 블랙'을 시켰던 일행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엄청나게 진하고 썼기 때문이다. 물을 몇 배나 더 부어 희석해야 한국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될 듯했다.
화이트는 카페라테와 비슷하다. 필터는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스페셜티 커피'다.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패트리샤 브루어스'였다.
때마침 오전 일정을 시작한 변호사들이 법복을 입은 채 서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카페 내부에 테이블과 의자가 없었다.
바깥에 플라스틱 상자 몇 개만 놓였을 뿐이었다.
카페에서 공부하며 죽치고 앉아 있는 '카공족'들이 발붙일 수 없는 구조다.
양질의 커피를 뽑아 들고 마시며 걸어가거나 잠시 서서 마신 뒤 일터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패트리샤에서는 화이트를 시켜봤다.
노멀 밀크를 첨가한 이 커피는 커피를 잘 모르는 '커알못'인 필자의 입맛에 맞았다.
패트리샤에서 만난 일본 오사카 출신 점원 마도카는 커피를 좋아해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된 바리스타다.
팬데믹으로 실직한 뒤 수많은 커피숍이 있는 데 착안해 혼자 커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는 빅토리아 마켓에 있는 '마켓 레인 커피'를 방문했다.
호주에서 길거리 표지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좁은 형태의 길이다.
우리나라의 골목길 정도가 되겠다.
해석하면 '시장 골목 커피'다.
이곳의 특징은 계절에 맞는 원두를 직접 선별해 가장 좋은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만족을 느낀 것은 마켓 레인 커피 맞은편의 디저트 가게에서 마신 라테였다.
'멜버른에서는 아무 곳을 가더라도 커피가 다 맛있구나!'
풍경과 미식…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몬탈토 와이너리
모닝턴반도 끝에 위치한 작은 와이너리 몬탈토는 와이너리가 변할 수 있는 한계를 보여줬다.
완만한 구릉에 자리 잡은 포도밭 언덕에는 유리와 목조로 지어진 현대적인 건물이 살포시 앉아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포도밭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식탁이 보인다.
바로 옆 대연회장에서는 단체가 모여 행사를 열고 있다.
호주 내 17개 와이너리가 가입된 'Ultimate Winery Experiences in Australia'라는 단체의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중이었다. 품평회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와이너리 한쪽에는 유기농 채소들이 재배되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었고, 이곳까지 야외테이블이 놓여 있어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뒤쪽으로 저 멀리 포도밭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쪽으로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놓여 있어 마치 공원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곳에서 식사한다면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실내 식당 내부에서는 커다란 통창을 통해 흙벽과 주변 포도밭, 올리브 숲, 목초지가 보인다.
메뉴 가운데서는 특히 피자가 맛있었다.
피자 반죽은 바삭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았다.
애호박 샐러드와 양갈비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은 특히 음식의 질과 양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스토랑 한쪽에서는 포도주 시음도 이뤄진다.
바디감 있는 와인에서부터, 맛깔스럽고 달콤한 로제와인까지 다양한 와인을 시음했다.
브라이튼 비치와 샌드링햄에서 엿본 호주인들의 삶
멜버른 동쪽 단데농 아래쪽 해변에는 알록달록 멋진 바닷가 별장이 멋진 브라이튼 비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필립만을 바라보고 서 있는 90여개의 '비치 박스'들을 만날 수 있다.
비치 박스라는 이름의 이 오두막들은 우리나라의 6평짜리 농막을 빼닮았다.
형형색색의 이 비치 박스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채색돼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원래 해수욕을 즐기던 여행객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낚시도구 또는 서핑 도구 등을 보관하던 장소였으나 최근에는 아름다움 덕분에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한국의 아웃도어 제조업체에서도 이 이름을 빌려 텐트의 일종인 타프쉘 브라이튼을 출시해 인기를 끈 적도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이 비치 박스의 가격을 물었다.
30만 호주달러 후반에서 50만 호주달러 사이라는 것이다.
자그마한 농막 하나의 가격이 4억원가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은 온통 값비싼 저택들이다.
멜버른 교외의 값비싼 저택들은 영화배우나 부유한 로펌 주인들의 소유라고 한다.
브라이튼 비치를 다녀온 뒤 그 풍경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뒤 조금 더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브라이튼을 거쳐 샌드링햄 라인 가장 끝 쪽인 샌드링햄까지 갔다.
조용한 포구 도시인 샌드링햄도 브라이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분위기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주민들은 해변으로 가서 목줄을 풀어놓은 채 산책을 하고 있었다.
호주의 경우 해변 등지에서는 반려견의 목줄을 풀고 산책할 수 있는 구간이 많다.
견주가 공을 던지면 반려견이 물어오는 등의 장면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반려견들은 바다 한가운데까지 헤엄치고 가서 공을 물어왔다.
뒤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또 어디선가 나타난 어린 여자아이들이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해변을 빗질하듯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뜻의 '비치 커밍'이다.
걸스카우트와 비슷한 호주의 '빅토리아 걸 가이드'(Girl Guides Victoria) 소속 어린이들이었다.
주민 자율에 의해 깨끗하게 관리되는 해변의 모습과 시민의식이 너무 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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