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좋아하는 걸 하며 밥도 벌 수는 없을까
'산행 취재'에 사진기자와 단 둘이 갔다. 같이 가기로 한 출연자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일명 '빵꾸'났다. 기자가 기획한 산행 취재에 출연자 없이 가는 경우는 월간<山>에 잘 없다. 어쩌겠나? 되는 대로 해야지. 사진 기자의 이름은 양수열. 그는 월간<山> 사진을 담당하는 'C영상 미디어'에서 10년간 일했다. 이참에 그를 인터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산을 정말로 좋아하는 걸까? 우리는 산을 정말로 좋아하는 걸까?
얼마 전 인터뷰할 때 이렇게 질문했다. "저(윤성중)는 자발적인 산행을 하지 않아요. 일이니까 산에 가는 거죠. 그래서 자발적으로 산에 가는 사람이 신기해요. 당신은 어떻게 자발적으로 산에 갈 수 있죠?"
이것은 "산이 왜 좋죠? 산에 왜 가죠?"라는 질문의 다른 버전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자세한 답변을 듣기 위한 '미끼'다. 이걸 그대로 기사에 썼더니 글을 읽은 신준범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성중이 너는 정말 산을 싫어하는구나." 나는 당황했다. 듣고 보니 선배가 그렇게 말할 만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나는 진짜로 산을 좋아하는 건가? 따져봤다.
산에 오르는 행위, 혹은 산 자체를 싫어한다면 나는 여기서 이 일을 하진 않겠지. 하지만 나는 일할 때 말고는 산에 가지 않는다. 혼자 혹은 친구들과 취재 목적 없이 산에 가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내가 친구들한테 전화하면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왜, 또, 어디 가자고? 회사 일이야? 거짓말 하지마. 취재지?"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산에 가는 것에 능숙한 사람이다. 산에 다녀와서 기사 쓰는 것에 익숙하다. 물론 이 일을 좋아한다. 이 일을 좋아하는 것과 산을 좋아하는 건 같은 건가? 잘 모르겠다. 내 안에서 어떤 놈이 욕하면서 소리친다.
"그러니까, 너(윤성중)는 산을 정말로 좋아하니? 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 나는 거기에 답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렇네." 당당하게 '좋다'고 할 순 없다. 왜냐하면 일이 가끔 지겨울 때가 있으니까. 내 안에서 소리친 놈은 가슴을 쾅쾅 치면서 미치고 팔짝 뛴다. 양수열 기자는 어떨까? 그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산행지로 차를 몰면서 나는 슬슬 발동 걸었다.
"수열아, 잘 지냈어? 요즘 어때?" 그와 나는 동갑이다. 한 달에 한 번, 취재 때 본다. 그가 대답했다. "어, 뭐, 그냥 그렇지." 그는 무뚝뚝하다. '나한테 이상한 걸 물어보면 때릴 거야!'라고 하듯 그는 냉랭하다. 그래도 나는 항상 꿋꿋하게 그에게 물어본다.
"너는 나랑 달리 산행 취재 때 참 피곤할 것 같아. 나는 산에 가면 산이 예쁘든 못생겼든 그대로 글로 쓰면 되니까. 너는 좋은 이미지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잖아? 그렇지?"
"그렇지. 산이 예쁘든 못생겼든, 사람들이 봤을 때 멋있다고 느끼게 찍어야 될 것 아녀(그는 충청도 사람이다. 가끔 사투리를 쓴다)."
"못생긴 건 못생기게 나오는 거지, 그걸 어떻게 예쁘게 해? 그냥 그대로 찍어서 책에 실으면 안 돼?"
"허! 프로가 아니구먼. 잡지는 이미지가 반 아니여. 이미지가 좋아야 사람들이 좋아하지. 참 내, 답답한 소리하네."
"답답하긴 뭐가 답답해! 그냥 찍은 거 그대로 줘! 그게 바로 기자의 진실성 아니야!"
"그래 그냥 줄게. 막 찍어서 준다. 그럼 책이 어떻게 되나 봐라."
어쨌든 산에 갔을 때 그는 나보다 더욱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다. 게다가 카메라까지 무겁다. 그걸 지고 가파른 오르막과 마주한다면 그 자리에서 하산해 집에 가고 싶을 것 같다. 지금까지 퇴사하지 않고 버틴 그가 신기했다. 그는 산을 좋아해서 버틴 걸까? 산 타는 것과 산 타면서 사진 찍는 것에 능숙한 결과 '그런가보다' 하면서 시간을 흘려 보낸 걸까? 옥신각신 한 끝에 그는 고백했다.
"빚 갚아야지. 벌어 먹고 살아야지. 어쩌겠냐. 힘들어도 해야지. 직장인은 무적이야."
그는 이 말을 두 달 전 설악산 서북주릉에서도 했었다. 나중에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일하러 간 게 아니었다면 나는 도중에 내려갔을 거야"라고 했다.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간 뒤 산 입구에서 내려 배낭을 멨다. 나는 사진기자가 먹을 식량까지 다 챙겼다. 그는 카메라와 렌즈를 모조리 주머니에 넣고 어깨에 멨다. 나와 그의 배낭은 무거웠다. 양수열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 둘만 산행하는 건 처음이다. 오붓하게 가보자!" 그가 대답했다. "나는 너랑 오붓한 것 싫어. 집에 가고 싶어."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그는 잘 따라왔다.
우리는 금북정맥을 탔다. 봉우리 10개 정도 넘었다. 나는 도중에 다리에 쥐가 났다. 양수열 기자도 다리에 쥐가 났다. 그는 무릎이 아파 절룩거리기까지 했다. 겨우 야영 터에 도착해 텐트를 쳤다. 이전까지 우리는 헉헉대기만 했을 뿐 별 다른 대화를 하진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비좁은 텐트에 몸을 욱여넣었다. 잔뜩 쭈그린 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리 괜찮아? 너는 이래도 산이 좋니?"
"응, 괜찮아. 산이 좋냐고? 난 그 감정을 잘 모르겠어."
"너는 산에 어떻게 다니게 됐니?"
"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취미가 없었어.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게 등산이었지."
"등산이 손쉽게 할 수 있었다고?"
"응 나는 그랬어. 혼자 하기에 딱 적당했지. 혼자 산에 가면 적당히 가다가 '아 오늘 좋네'하면 꼭대기까지 가는 거고. '아, 오늘 귀찮네'하면 도중에 내려와서 혼자 맥주 한 캔 마시고. 정상에 안 갔다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고. 가만히 걸으면서 신기한 나무 보고, 마을 내려다보고. 나, 처음에 산에 다닐 땐 지금보다 돈이 없었어. 쉬는 날 집에 혼자 있기는 너무 심심하고. '그럼 뭐 하지?' 하다가 산에 간 거야. 버스비만 있으면 나가서 뭔가를 보고 올 수 있는 거잖아."
"아이엠에프IMF 때 회사서 짤린 넥타이 부대가 산에 간 거랑 비슷한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양수열 기자는 쉬는 날에도 산에 간다. 이따금 클라이밍도 한다. 캠핑 장비도 나보다 훨씬 많이 갖고 있다. 그는 산을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일 때문에 산에 가는 건 그다지 반기지 않는 눈치다. 나는 과연 산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에게 진단받고 싶었다.
"얼마 전엔 누군가 나한테 '너 정말 산 싫어하는구나'라고 했어. 나는 좀 당황했지. 네가 봐도 내가 산 싫어하는 것 같아?"
"응 반은 맞는 말 같아. 너 오늘 올 때도 귀찮았지? 나랑 촬영 갈 때 항상 귀찮아 해."
"응, 귀찮았지. 어떻게 알았지?"
"너 귀찮다는 말 자주 해. 표정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그럼 나는 산을 싫어하는 건가?"
"싫어한다고 단정하긴 좀 그렇고. 그냥 일하기가 싫은 게 아닐까? 노동력과 비용을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은 거야. 나랑 비슷한 거지. 나는 회사 비용으로 산에 가는 건 별로. 내 시간과 내 돈을 쓰고 산에 가는 게 훨씬 좋아."
"아! 그런 건가? 하지만 나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산에 가진 않는데?"
"그건 쉬고 싶은 거야. 일하면서 산에 가는데, 뭣하러 쉴 때 또 산에 가. 넌 네가 기획한 걸 산에서 실현시키는 걸 즐겨. 기획한 걸 실현시키기 위해선 사람들이 필요하잖아. 혼자서는 못하잖아. 그러니까 혼자선 산에 안 가는 거지. 그리고 산과 관련된 너의 아이디어는 재밌어. 산과 산 타는 것에 관한 흥미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을까?"
양수열 기자는 나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나는 월간<山>에서 일하는 걸 즐긴다. 누가 봐도 분명 산꾼인 것이다. 마음속을 꽉 막고 있던 어떤 덩어리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둘 다 망한다'는 공식이 있다. 이 공식은 우리한테도 똑같이 통하는데, 우리는 둘 다 망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다. 나는 평상시 때 산에 가지 않는 방법으로, 양수열 기자는 일할 때 최대한 산에 가지 않는 방법으로. 나는 양수열 기자를 위로하려는 투로 말했다.
"확실히, 너는 산행 취재 때 나보다 피곤할 거야. 산에 가는 게 시간 대비 노동력이 더 들잖아." 그가 대답했다. "아, 산행 수당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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