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트, 트위치, 인스타카트… 실패한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시대[박건형의 홀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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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창업자가 되는 것은 단순히 사업을 잘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엄청난 돈과 명예는 물론이고, 일론 머스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세계적인 추종자를 갖게 되죠. 창업자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발상과 과감한 추진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글, 메타 같은 극히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실리콘밸리의 생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상당수는 반짝 인기몰이를 한 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와 테크 업계에서는 ‘실패한 창업자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리프트, 트위치, 인스타카트, 핀터레스트, 펠로톤. 이들 기업의 창업자들이 모두 최근 회사를 떠났습니다. 실리콘밸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뒤쳐지기 시작한 우버의 경쟁자
이달 초 리프트 공동창업자 로건 그린과 존 짐머가 회사에서 물러났습니다. 회사를 설립한지 11년만입니다. 이들의 자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출신 데이비드 리셔가 맡게 됩니다. 리프트는 한때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우버를 위협했던 2위 사업자입니다. 초창기 리프트는 우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우버는 비싼 검은색 차량을 내세워 택시를 대체하려고 했고, 리프트는 누구나 택시 기사가 될 수 있는 호출 승차 모델을 앞세웠습니다. 우버는 뒷자리에 앉아가는 모범 택시, 리프트는 옆자리에 운전자와 함께 앉아가는 친근한 서비스를 지향한 것이죠. 물론 두 회사의 사업은 갈수록 비슷해졌습니다.
1위 사업자인 우버가 규제당국과 싸우는 동안 리프트는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2017년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 스캔들로 물러나고 회사가 혼란에 빠진 사이 리프트는 미국 최대 자전거 공유업체 모티베이트를 2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이핏데이터에 따르면 우버의 시장점유율은 2020년 62%에서 2002년 74%까지 올랐고, 리프트는 같은 기간 38%에서 26%로 떨어졌습니다. 리프트 주식은 2019년 상장 이후 90% 급락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리프트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최근에는 전 직원의 13%에 해당하는 700명을 해고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특히 우버는 최근 리프트를 겨냥해 차량공유요금을 더 낮추고 있습니다.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선두업체의 전형적인 공격 수단이죠. 리프트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출혈경쟁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CNN은 “우버는 단순한 차량공유업체를 넘어 음식과 식료품 배달업체 진출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했지만 리프트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업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시대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겁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리프트의 사례는 한때 실리콘밸리 문화를 대표했던 ‘치열한 경쟁’이 사실은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창업자들의 퇴진 역시 차량공유에만 집중하겠다는 이들의 철학이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 라이브 비디오 왕국 건설자의 퇴진
“2006년 우리는 인터넷을 위한 라이브 비디오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트위치가 됐습니다. 16년이 지났고 전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준비가 됐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이뤄준 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지난달 17일에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의 에멧 쉬어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2006년 저스틴 칸과 함께 트위치의 전신 ‘저스틴TV’를 개발한 쉬어는 2011년 게임 카테고리만을 별도로 떼어 트위치를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게임을 중계하고 전세계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쉬어의 아이디어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불과 3년 뒤 아마존이 트위치를 9억7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에 인수했고, 쉬어는 독립적으로 트위치를 책임져왔습니다. 트위치의 일일 활성 사용자는 3000만명, 월간 스트리밍 사용자는 800만을 넘습니다.
그러나 트위치는 사용자 숫자가 정체되고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 문제로 고심해 왔습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크리에이터들과의 수익 배분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음란 방송 같은 불건전 콘텐츠 단속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유튜브에 크리에이터를 대거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비용 절감을 위해 4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해야 했습니다. 리더십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었다는 겁니다.
쉬어는 “지금보다 트위치와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후임자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사그라든 식료품 장보기 열풍
인도계 캐나다인 아푸르바 메타는 33세의 나이에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블랙베리, 퀄컴, 아마존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메타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무려 20개의 스타트업을 차렸는데 모두 망했습니다. 2012년 마지막으로 창업한 기업이 인스타카트였습니다.
인스타카트의 초기 투자자 가운데는 실리콘밸리의 큰손인 와이컴비네이터가 있습니다. 당초 와이컴비네이터는 인스타카트 투자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메타는 와이컴비네이터의 핵심 파트너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인스타카트 서비스를 이용해 맥주 한 팩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파트너가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인스타카트는 고객이 구매할 식료품을 지정하면 회원들이 대신 매장을 찾아가 물건을 산 뒤 장바구니에 담아 1시간 이내에 배달해주는 일종의 심부름 서비스입니다. 인스타카트는 생필품 하나를 사려 해도 차를 몰고 멀리 나가야 하는 미국식 쇼핑 문화의 빈틈을 파고 들었습니다. 쇼핑할 여유가 많지 않은 맞벌이 부부나 전문직 독신자도 인스타카트에 열광했습니다.
2021년 인스타카트의 기업가치는 390억달러까지 치솟았고, 거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유행이 잦아들고 투자 시장이 악화되면서 당초 계획했던 기업공개(IPO)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사람들이 식료품점을 직접 찾기 시작하면서 인스타카트는 냉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면서 “메타는 경쟁사인 우버와 도어대시에 인수 또는 제휴에 관심이 있는지 타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메타는 이사회 임원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었습니다. 상장은 계속 미뤄졌고, 투자자와 임원들은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인스타카트의 기업 가치는 240억달러로 40%나 폭락했습니다. 최고 경영진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고, 그 중 한 명은 3개월만에 사임하기도 했습니다. 메타는 지난해 7월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놓고 회장으로 물러나겠다”면서 “IPO가 이뤄지면 회장도 그만두겠다”고 밝혔습니다.
인스타카트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식료품점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광고 시스템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한 산업 컨설턴트는 뉴욕타임스에 “일반 쇼핑객이나 소매업체를 위한 상식이 없는 프로그램”이라는 혹평을 내놓았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
구글 온라인 광고팀 출신으로 소셜미디어 핀터레스트를 공동 설립했던 벤 실버만 역시 지난해 CEO직을 내놓았습니다. 실버만은 사용자들이 관심사를 핀으로 찍어 자기 계정에 끌어오게 하는 독특한 컨셉으로 전세계 수억 명이 사용하는 핀터레스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월간사용수가 3억명 수준으로 트위터와 비슷할 정도입니다. 2021년에는 매출 26억달러에 3억1600달러의 이익을 창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용자수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회사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면서 실버만의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특히 전직 핀터레스트 직원들이 사내에 인종·성차별, 임금 불평등, 상사의 보복 행위 등을 폭로하면서 주주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실버만과 핀터레스트는 여성 친화적이고 깨끗한 소셜미디어로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미지가 훼손된 겁니다. 결국 핀터레스트는 피해자들에게 2250만달러의 합의금을 주고, 250만달러의 기부금을 자선단체에 냈습니다. 이 밖에 코로나 특수를 누리며 급성장했던 실내용 자전거·트레드밀 업체 펠로톤 창업자 존 폴리도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사임했습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리더십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물러나느냐입니다. 거대 빅테크 가운데 창업자가 건재한 곳은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페이스북)가 유일합니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보유주식 의결권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영원히 쫓겨나지 않을 시스템을 구축했죠. 그렇다고 메타가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처럼 정상에서 내려온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후임자 가운데도 팀 쿡 애플 CEO처럼 더 큰 제국을 건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마존의 앤디 재시처럼 고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프트, 트위치, 인스타카트, 핀터레스트, 펠로톤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때 실리콘밸리의 차세대 주자로 촉망받던 기업들입니다. 과연 리더십 변화가 이들의 부활을 이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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