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석달 만에 대구 버리고 서울 달려간 최은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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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최은주 당시 대구미술관장은 현지 일간지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자신감 넘치는 새해 감회와 구상을 털어놓았다. 매일신문>
대구미술관장에 재취임한 지 불과 석달 만에 말을 갈아탄 것이다.
하지만, 비중 있는 지역 미술관 수장이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되어 더 위계가 높은 미술관 관장 자리를 노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실제로 메이저급 지역미술관장 자리를 석 달 만에 내던진 최 관장의 서울행은 미술판 기획자들의 우려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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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최은주 당시 대구미술관장은 현지 일간지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자신감 넘치는 새해 감회와 구상을 털어놓았다. ‘다시 돌아와서 안정적으로 올해 계획했던 전시들을 세팅하고 해외 교류를 유지할 수 있게 돼 안심이다. 공모 당시 직무수행계획서와 PT 자료를 만들면서 무엇보다도 대구미술관을 세계적으로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결정한 올해의 캐치프레이즈는 '대구와 세계'다.…대구에서 가장 '힙한' 장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매일신문>1월10일치 ‘최은주 대구미술관 관장 "가장 ‘힙한' 명소 만들겠다"’)
대구미술과 소속 미술관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의욕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국립미술관 학예실장과 경기도미술관장 출신으로 앞서 지난 2019~20년 대구미술관장을 이미 역임한 최 관장은 지난해 11월 상부 조직으로 신설된 대구문예진흥원 산하로 들어간 대구미술관 관장공모에 다시 응해 과거 대구 지역 공공문화예술기관장으로는 유일하게 재임에 성공했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대구 문화계의 기대 속에 적극적으로 두번째 임기 중 각종 전시와 시민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3~4월, 새봄에 접어들면서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허망한 공언이 되어버렸다. 그는 인터뷰를 한 그달 31일부터 시작한 서울시립미술관 신임관장 공모에 바로 신청서를 냈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뒤 지난달 7일 대구의 소속기관에는 일체 함구한 채 휴가원을 내고 서울로 가서 면접시험을 치렀다. 3월23일 그가 서울시립관장에 내정됐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30일 공식임명장을 받고 첫 출근을 했다. 대구미술관장에 재취임한 지 불과 석달 만에 말을 갈아탄 것이다.
그는 3월7일 면접에 응모한 사실을 지역 언론사가 보도하자 그 다음 날 소속기관에 사의를 표명했다. 사의부터 관장임명까지는 한달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막 퇴임했거나 임기가 거의 끝나 재계약 여부가 불분명한 시점에서 다른 공공미술관에 근무하는 관장들이 다른 미술관 신임관장에 원서를 내는 경우는 종종 있었고 큰 문제가 된 바 없다. 하지만, 비중 있는 지역 미술관 수장이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되어 더 위계가 높은 미술관 관장 자리를 노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구가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대가들을 배출했고 주요 사건들도 자주 일어났던 미술 본향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 사태의 충격파는 간단치 않다. 실제로 그가 사의를 밝히자 대구 미술계와 관계는 큰 혼란에 빠져 아직도 후임자를 선임하지 못한 채 그의 행보에 대한 구설이 거듭되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미술공직자, 큐레이터의 공공적 윤리를 저버린 행태라는 비판과 더불어 사전에 내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설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기자는 최 관장이 19일 취임 뒤 첫 전시로 내놓은 미국 거장 에드워드 호퍼의 특별전 현장에서 통화를 했다. 갑작스러운 이직 사유를 묻자 “내 개인의 직업적 선택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구 문예진흥원 산하의 미술관 체제에서는 처우 등이 예상보다 너무 달라져 일하기 어려웠고 제가 나간 뒤 오히려 편안해 하는 것 같다”면서 큐레이터와 공직자의 윤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언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연말과 연초 대전시와 수원시는 학예직 관장이 나간 대전시립미술관장과 수원시립미술관장 자리에는 일반직 공무원을 임명했다. 수원시립미술관의 경우 학예과장, 수집연구팀장까지 일반 공무원들이 차지했다. 미술판에서는 큐레이터의 위상과 기능이 퇴행적으로 위축된다는 우려가 적잖이 나왔지만, 지자체 관료들은 좋은 자리만 좇는 학예직 기획자들을 어떻게 믿느냐며 차라리 지역 미술인이나 공무원이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메이저급 지역미술관장 자리를 석 달 만에 내던진 최 관장의 서울행은 미술판 기획자들의 우려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연륜을 내세워 주요 공공미술관장을 최근 도맡아온 고참급 큐레이터들이 현재 맡은 공직의 무게를 경시하고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욕망경쟁을 노골화한다면 지자체나 지역 미술인들의 학예직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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