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잔류, 박정아 이적’이 불러온 여자부 FA시장의 ‘나비효과’

남정훈 2023. 4. 2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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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2022~2023 V리그가 마무리되고 펼쳐진 여자부 FA 시장을 보면 나비효과라는 단어가 딱 떠오른다. ‘빅3’ 중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에 뛰는 ‘배구여제’ 김연경의 흥국생명 잔류와 ‘클러치박’ 박정아의 페퍼저축은행 이적이 FA 시장에 큰 태풍을 불러왔다. 

김연경. 뉴시스
지난 16일 김연경의 흥국생명 잔류가 공식발표되고, 17일 박정아의 페퍼저축은행 이적이 발표된 이후 나머지 FA 선수들의 계약 소식이 줄줄이 들려왔다. 이는 곧 FA 선수 중 가장 덩치가 큰 두 선수의 행보에 따라 다른 선수들의 행선지가 결정되고, 성사되지 않을 뻔 했던 계약이 성사됐음을 의미한다.

김연경의 흥국생명 잔류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구단은 현대건설이다. 한때 김연경이 흥국생명 잔류가 아닌 현대건설 이적에 더 큰 무게를 두던 때가 있었다. 배구계에선 김연경의 현대건설 이적 공식 발표가 곧 뜬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그러나 김연경은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과의 면담 후 장고의 고민 끝에 흥국생명 잔류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건설측에 정중하게 협상 중단의 뜻을 전했지만, 현대건설은 김연경을 데려오기 위해 샐러리캡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김연경과 포지션이 겹치는 내부 FA인 황민경과의 구체적인 협상 테이블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사이 황민경은 영입의사를 타진해 온 IBK기업은행과 2년 총액 9억원에 팀을 옮기게 됐다. IBK기업은행의 황민경 영입은 일찌감치 성사됐으나 발표는 18일 됐다. 그만큼 황민경이 협상과정에서 현대건설에 서운함을 느꼈단 얘기다.

황민경
결국 현대건설은 김연경을 쫓다 2019~2020시즌부터 주장을 맡아온 ‘살림꾼’ 황민경을 놓치고 말았다. 현대건설은 또 다른 내부 FA인 리베로 김연견, 아웃사이드 히터 정시영과는 도장을 찍었고, 아포짓 스파이커 황연주와도 구두로 협의를 마쳐 잔류를 시키게 됐지만, 황민경의 직접적 대체자 역할을 해줘야 할 고예림이 수술대에 오르고 재활 기간도 6개월 이상 소요될 예정이라 전력 타격이 크다.
박정아. 연합뉴스
박정아의 페퍼저축은행 이적에는 여러 선수가 얽혀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박정아와 배유나를 비롯해 정대영, 문정원, 전새얀까지 무려 5명의 선수가 FA로 풀린 도로공사. 전새얀을 빼면 4명이 모두 주전이었고, 사상 초유의 ‘리버스 스윕’이라는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해 FA 선수들의 요구액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어졌다. 그들의 요구액을 다 들어주면 모두 잡을 수 없는 상황. 도로공사의 가장 우선적 협상 대상자는 팀 전력의 핵심인 박정아와 배유나. 먼저 배유나는 5억5000만원(연봉 4억4000만원, 옵션 1억1000만원)에 3년 계약을 제시해 일찌감치 눌러앉혔다. 공식발표는 내부 FA를 모두 잡은 18일에 됐지만, 배유나의 계약은 11일에 성사됐다.

챔프전 직후 대만 여행을 떠난 박정아에겐 이미 계약 조건을 제시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은 대만에서 돌아온 14일부터 차려됐다. 페퍼저축은행이 보수상한선인 7억7500만원까지 지른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6억원대에서 시작해 7억원을 넘기는 금액까지 제시하며 박정아를 잔류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이 컸던 박정아가 페퍼저축은행으로의 이적을 선택하면서 도로공사의 다가올 청사진이 틀어져버렸다.

문정원
도로공사가 난감해진 것은 박정아를 잔류시키기 위해 제시 금액이 점점 더 오르면서 그 과정에서 문정원과 정대영이 요구하는 조건을 맞춰줄 수 없게 된 것. 결국 정대영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친정팀 GS칼텍스와 1년 3억원의 조건으로 이적했다. 문정원은 박정아의 이적으로 샐러리캡이 여유있어진 도로공사와 당초 본인의 제시금액 2억5000만원(연봉 2억2000만원, 옵션 3000만원)에 3년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됐다.
정대영(왼쪽)과 전새얀
가장 흥미로운 계약은 전새얀이다. 전새얀은 챔프전을 마치고 주전 세터 이윤정 등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짜가 21일. 여자부 FA 마감기한이 22일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보다. 도로공사도 주전 4명과의 협상에 치중하느라 전새얀에게는 구체적인 금액 제시도 못한 상황이었다. 박정아의 이적으로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의 구멍이 커진 도로공사는 샐러리캡의 여유가 커진 만큼 전새얀에게 2억1000만원(연봉 1억8000만원·옵션 3000만원)의 후한 연봉을 안겼다. 다만 계약 기간은 1년이기에 다음 시즌 후 계약 조건을 다시 협상한다. 흥미로운 것 하나 더. 유럽 여행 중인 전새얀의 계약은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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