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강행은 무리수"…증권학회장의 우려 3가지

최훈길 2023. 4. 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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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뿐 아니라 자본시장 전반 파장 고려해야”
①이사 충실의무 개정 논란, 여러 주주들 입장차 커
②물적분할·상장 통제, 투자 위축·소송만 남발 우려
③‘벤처업계 숙원’ 복수의결권 무산되면 득보다 실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치권에서 소액주주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제대로 된 방안으로 노력했으면 합니다. 거론된 방식대로 상법 개정을 강행하면 무리수로 인한 후유증이 우려됩니다.”

신현한 한국증권학회장(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은 19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법 개정 입장에 이같이 밝혔다. 신 회장은 “전문가들과 제대로 된 연구도 없이 소액주주를 위한다며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건 오히려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피폐하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정부 당시 근로자를 위한다며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지만, 경제 전체적으론 후유증이 컸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76년 창립된 한국증권학회는 회원이 1500여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재무·금융 분야 학회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제47차 정기 총회에서 제40대 증권학회장으로 취임했다. 뉴욕주립대 교수 등을 역임한 신 회장은 현재 연세대에 재직하면서 코넥스시장 상장공시 위원장, 국민연금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한국증권학회장을 맡고 있는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사진=이코노미스트)

앞서 이재명 대표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천사백만 개미투자자 권익 보호를 위한 일반주주·더불어민주당 간담회’에서 “정부·여당측의 비협조로 진척이 없는 상태인데, 오늘 이 논의들을 통해 상법개정안이 신속하게 통과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언급한 법안은 이용우·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이다.

해당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수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상법에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의원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박 의원안은 ‘회사와 총주주’로 바꾸는 내용이다. 두 법안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신 회장은 세 가지 우려를 제기했다. 첫째 ‘이사의 충실의무’를 새로 규정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는 “회사 이사들이 주로 구성 과정, 역할, 최종 책임에서 대주주들에게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의사결정이나 업무 집행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회사는 사내·사외, 국내·국외, 기관·개인 투자자 등 다양한 주주들로 구성돼 있다”며 “주주가 이렇게 많은데 어떤 주주의 이익을 고려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소액주주 이익만 고려할 수도 없고, 소액주주 이익을 어느정도 고려해야 하는지도 불투명하다”고 꼬집었다.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있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무 자르듯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못 박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로 상법까지 바꿔 물적분할·상장을 통제하는 게 맞느냐는 우려다. 이재명 대표는 “물적 분할과 상장을 통해 다수의 주주와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소수의 대주주들에게 부당한 이익을 부여하는 이런 나쁜 관행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우 의원은 “물적분발 등이 발생했을 때 소액주주가 소송을 통해 교정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물적분할·상장=나쁜 관행’이라고 단순히 얘기할 순 없다”며 “현재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관련 상법을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업이 제때 물적분할을 못해 해당 분야에 투자를 못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주주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물적분할을 나쁜 관행이라고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신 회장은 물적분할·상장을 제한하더라도 이를 상법까지 개정하고, 주주소송까지 추가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작년 12월에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심사 강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상장심사 강화를 넘어 상법 개정·소송 장치까지 마련되면 소송이 남발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필요한 인수·합병(M&A)도 주저하게 돼, M&A 시장까지 냉각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천사백만 개미투자자 권익 보호를 위한 일반주주-더불어민주당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노진환 기자)

셋째로 ‘벤처업계 숙원’ 복수의결권이 무산될 것이란 우려다. 이용우 의원은 복수의결권 관련해 “(소액주주를 위한) 제도적 교정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된다면 오히려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이 높다”며 복수의결권 도입에 난색을 표했다.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은 주당 의결권 수가 복수로 부여되는 주식을 말한다. 현재 법사위에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주당 최대 10배의 의결권(지분율 30% 미만 경우)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도 시행 시 자금 유치로 지분율이 희석되더라도 창업주가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다만 경영권 세습 악용 우려로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다.

신 회장은 “회사를 키울수록 지분율이 희석돼 회사를 떠나야 한다면 어떤 창업주가 회사를 키우려고 할 것인가”라며 “복수의결권 도입에 따른 세습 우려보다 벤처업계의 숙원인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 시장에 미칠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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