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위원 사퇴 촉구·파행' 부른 최저임금 산출방식 어땠기에
기사내용 요약
노동계, 최임위 첫 회의서 "공익위원 권순원 사퇴하라"
"법적 기준 아닌 근거없는 산식으로 최저임금 결정해"
권순원, 주69시간제 밑그림도…"독립성·중립성 상실"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첫 회의가 공익위원 사퇴를 촉구하는 노동계 시위로 파행하면서 그 배경인 '최저임금 산출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개최될 예정이었던 최임위 제1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양대노총이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년 최저임금이 '자의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데 따른 것이다.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이자 독립 기구인 최임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은 양대노총, 사용자위원은 경영계, 공익위원은 정부가 추천한다.
이 중 공익위원은 노사 대립 구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며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노동계가 문제 삼는 것은 노사가 각자의 최저임금 요구안을 놓고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공익위원들은 이른바 '중재안'을 제시하는데, 이 때 내놓는 최저임금의 산출 방식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적용 중인 최저임금(9620원)의 지난해 심의 과정을 보면 공익위원들은 노사가 각각 제시한 최종 요구안 1만80원과 9330원에서 더는 간극을 좁히지 못하자 단일안으로 9620원을 제시했다.
직전 연도보다 5.0% 인상된 수준으로, 공익위원들은 그 근거로 경제성장률 전망치(2.7%)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4.5%)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2.2%)를 뺐다고 설명했다.
공익위원들은 이에 앞서 지난해 적용 최저임금(9160원) 결정 당시에도 노사의 1만원과 8850원 사이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자 5.1% 인상한 9160원을 제시했는데, 이 때 역시 똑같은 산식을 적용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지난해 최저임금 의결 직후 "매년 기준들이 들쭉날쭉해선 안 되겠다고 하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며 "예측 가능하고 하나의 결정 기준이 될 수 있는 산식을 마련해보자는 것이 작년부터 가졌던 생각"이라고 밝혔다. 권 교수는 2019년부터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반발했다.
최저임금법 제4조1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명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 중에서도 '근로자 생계비'를 결정 기준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매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을 무시한 채 공익위원들이 법적 근거도 없는 계산식으로 2년 연속 최저임금을 자의적이고 임의대로 결정했으며, 그 중심에 권 교수가 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이마저도 올해 적용 인상률(5.0%)을 결정하는 과정에선 최신이 아닌 이전의 통계치를 활용해 '엉터리'로 최저임금을 결정했다고 노동계는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처럼 산식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매년 10차례 가까이 최임위를 개최하고, 노사가 거듭 수정안을 제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답정너',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는 "권 교수는 듣도 보도 못한 계산식을 들고 와 최저임금 결정구조 자체를 무력화시켰다"며 "이러한 기준이 올해도 여과 없이 적용된다면 사회적 대화 기구라는 최임위의 근본 취지는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노동계가 권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공익위원이 지켜야 할 독립성과 중립성,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권 교수는 '주 최대 69시간'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밑그림을 그린 전문가 논의 기구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의 좌장을 맡은 바 있다.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가 최저임금을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최임위 회의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권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자 권 교수와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을 포함한 공익위원 전원은 끝내 회의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노동계는 1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강한 유감을 표한 뒤 퇴장했다.
근로자위원인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오늘 보여준 행태로 최임위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는 또 한 번 무너졌다"며 "차기 전원회의에서 위원장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권 교수도 즉각 사퇴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다만 향후 최임위 일정은 미지수다. 최임위 사무국은 빠른 시일 내에 제1차 전원회의를 다시 개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노·사·공 합의로 일정을 잡아야 하는 만큼 현 상황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일정이 잡히더라도 '1만2000원'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최소 '동결'을 주장하는 경영계의 최저임금 인상률,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 등 넘어야 할 쟁점이 만만치 않아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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