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코인 시장도 '증권성 논란'…국내 금융당국, 참고할 '기준'이 없다
SEC 위원장, "이더리움 증권이냐" 질문에도 침묵…韓 당국 참고 힘들 듯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대형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를 기소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소와 동시에 6개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간주하면서 미국에서도 코인의 '증권성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SEC는 비트렉스에서 거래된 가상자산 중 6개가 증권이라고 주장했으나 해당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 게리 겐슬러(Gary Gensler) SEC 위원장은 이더리움(ETH), 리플(XRP) 등 주요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관한 답변을 회피했다. 이에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대한 미국 규제당국의 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국내 금융당국 또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기준 마련 과정에서 미국 사례를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의 규제 불확실성으로 국내 당국의 기준 마련도 늦어지거나 독자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SEC, 대시 등 6개 가상자산 '증권' 간주…대시 "합리적 근거 없다" 반박
SEC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시애틀 소재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렉스 글로벌'과 윌리엄 시하라 비트렉스 창립자(전 CEO)를 미등록 증권 거래소 운영 혐의로 기소했다. SEC는 비트렉스가 정식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증권 거래소 및 브로커리지 기관, 청산 기관 등을 운영함으로써 증권거래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기소와 함께 SEC는 비트렉스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중 6개를 증권으로 간주했다. OMG네트워크(OMG), 대시(DASH), 알고랜드(ALGO), 모노리스(TKN), 나가(NGC), IHT 등이다. 증권에 해당하는 6개 가상자산의 거래를 지원했기 때문에 비트렉스는 '미등록 증권 거래소'를 운영했다는 게 SEC의 입장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SEC의 증권성 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증권으로 간주된 가상자산 프로젝트 대시(DASH)는 "대시가 증권이라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트위터를 통해 SEC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대시 측은 미 규제당국이 증권성 판단에 활용하는 '하위 테스트(Howey Test)'의 내용을 들어 대시는 증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위테스트는 1946년 미국 대법원이 정립한 기준으로, 현재 미국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대시는 "하위테스트에는 '타인의 노력으로부터 수익이 발생할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하고 공동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증권이라고 나와있다. 이는 대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대시는 결제 기술일뿐 대시를 보유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수익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가 없다. 채굴자들은 채굴에 따른 대가를 받고, 노드(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노드 운영에 따른 대가를 받지만 대시를 보유한 것 자체만으로는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대시 프로젝트는 탈중앙화자율조직(DAO)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반 주식회사처럼 '타인의 노력'으로부터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주들은 회사가 주가 상승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기를 기대하지만, 대시 보유자들은 대시DAO가 어떤 노력을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시 측은 "미국의 규제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지고 있다. SEC는 예전에 이더리움(ETH)은 증권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는 재검토하겠고 한다"고 비판했다.
◇SEC 위원장, 이더리움·리플 증권성 여부에도 침묵…더 커진 규제 불확실성
대시의 지적대로 증권성 판단에 대한 SEC의 규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하원 청문회에서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가상자산의 증권성과 관련해 답변을 회피하면서 논란은 극대화됐다.
청문회에서 패트릭 맥헨리(Patrick McHenry)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은 겐슬러 위원장에게 이더리움(ETH)이 증권에 속하는지 질문했으나, 겐슬러 위원장은 증권을 분류하는 기준에 대해서만 설명하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에 맥헨리 의원은 "겐슬러 위원장은 SEC에서 가상자산 관련 집행조치만 15건 이상 단행했다. 그렇다면 이더리움이 증권인지 여부 정도는 답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겐슬러 위원장의 침묵은 그간 알려졌던 SEC의 입장이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 윌리엄 힌먼(William Hinman) 당시 SEC 기업금융국장은 "원래 증권성이 있던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이라도, 중앙화된 주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 증권이 아닐 수 있다"며 그 예시로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은 세계 시장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과 관련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간주돼 왔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증권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상식처럼 통용됐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리플(XRP)이 증권인지 묻는 질문에도 겐슬러 위원장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임을 이유로 답하지 않았다. 해당 질문을 던진 워런 데이비슨(Warren Davidson) 공화당 의원은 전날 겐슬러 위원장을 해임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겐슬러 위원장이 줄곧 답변을 피하면서 그의 과거 발언이 조명받기도 했다. 현재 트위터에서는 겐슬러 위원장이 지난 2019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행사에서 "알고랜드는 훌륭한 기술"이라고 언급한 영상이 5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SEC는 이번 비트렉스 기소와 동시에 알고랜드를 증권으로 간주했다.
◇국내 금융당국, 참고할 사례 없다…"독자적 기준 필요"
이번 사태를 두고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미국의 증권성 판단 기준 역시 불확실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금융당국은 미국 사례를 참고한다고 했지만, 미국조차 참고할만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규제당국은 전 세계 시가총액 규모 2위인 이더리움(ETH)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SEC가 증권으로 간주한 리플(XRP), 알고랜드(ALGO) 등은 시가총액 규모가 큰 가상자산으로 시장에 미칠 영향도 크지만, 이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에 국내 금융당국의 증권성 판단 기준 마련이 더 늦어지거나 독자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증권성 판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출범, SEC 가이드라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하며 증권성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변호사는 "미국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으로 쓰이는 하위테스트 자체가 194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굉장히 오래된 기준이다. 이를 가상자산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는데다, 국내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 범위가 미국에 비해 더 좁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당국의 기준 마련과 별개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 문턱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SEC가 어떤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간주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는 물론 해외 프로젝트도 국내 거래소 상장 시 증권이 아니라는 점을 상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란 추측이다.
현재 거래소들은 신규 상장 시 프로젝트로부터 증권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긴 법률자문서를 받고, 증권성 관련 이슈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의 이석우 대표는 지난달 말 주주총회에서 상장된 가상자산 중 이른바 '증권형 토큰'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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