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 로봇들이 주름잡는 꿈의 무대 ‘광산’[테크트렌드]
광산용 자율 주행 트럭이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3’에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하자원을 채굴하는 광업은 대중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하지만 인공지능(AI)과 로봇을 기반으로 한 자율화 시스템의 온상이 되는 산업이다. 이미 많은 대형 광산 업체는 탐사·채굴 작업에서도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로봇화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다. 광산용 로봇의 자율성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로봇화 장비의 주무대가 된 광산
광산 현장은 위험하면서도 고립돼 있다. 소수의 작업자를 제외하면 인적이 드물고 외부인의 접근도 쉽지 않은 험준한 지역에 자리한 데다 작업 현장은 붕괴·침수·가스 누출 등 각종 위험이 산재한 지하 탄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산 업체들은 생산성과 안전성의 향상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무인 장비와 시스템을 채택해 왔다.
광산 업체들의 무인 장비 도입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계는 1967년 채굴용 무인 레일 시스템 도입을 시초로 하는 단순 자동화 장비의 도입기다. 둘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원격 제어 장비의 도입기, 셋째는 2000년대 이후부터 진행되고 있는 자율화 시스템, 즉 로봇의 도입기다.
무인화 수준이나 장비의 다양성 측면에서 셋째 단계는 전 단계들과 크게 다르다. 이전의 무인화 수준은 사전에 정한 작업을 무한 반복하는 단순 자동화와 원거리에서 작업을 변경할 수 있는 원격 제어 수준에 그쳤다. 반면 지금은 스스로 판단하는 기능이 추가된 자율화 장비, 즉 로봇의 수준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로봇화된 장비를 사용하는 공정도 굴착·운반 등 일부 공정에 제한되지 않고 탐사·검사 등 대부분의 공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BHP와 FMG 등 글로벌 광산 업체들이 운영하는 광산 현장은 AI와 로봇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공정 혁신의 주무대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자율 주행 트럭들이 전 세계의 주요 광산들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운반용 트럭에 더해 탐사·채굴용 장비도 단순 자동화나 원격 조종의 수준을 뛰어넘어 자율화된 장비인 로봇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캐터필러와 ABB 등 광업용 장비 개발 업체들은 일부 광업용 로봇이 자율 주행차의 레벨 4에 상응하는 수준의 높은 자율성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 작업자의 명령이 없더라도 스스로 상황을 잘 예측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높은 자율성을 갖춘 로봇화 장비는 광산 업체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광산용 초대형 자율 주행 트럭을 제작하는 미국 캐터필러는 날씨에 관계없이 24시간 작동할 수 있는 자율 주행 트럭 덕분에 고객사들이 최대 20%의 비용 절감과 최대 30%의 생산성 향상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광산업계가 AI와 로봇을 기반으로 한 자율화 시스템을 도입해 2035년까지 매년 수천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운반·채굴 로봇 도입 확대
최근에는 AI 등 기반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탐사·채굴·운반 등 주요 작업에 사용되는 장비의 로봇화가 빨라지고 있다. 장비의 로봇화는 굴삭기·트럭 등 기존 장비에 작업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는 카메라·레이더·라이다 등의 센서와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클라우드로 보내는 통신 관련 기기를 추가 장착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로봇은 자원 탐사 로봇(mining inspection robot)과 로봇 굴삭기(robotic excavators) 등이 있다.
지하자원 탐사는 사고 위험성이 큰 작업이다. 지하자원을 탐사하려면 광부들이 직접 터널로 들어가 드릴로 구멍을 뚫어 가며 매장 지역을 찾아야 한다. 미래에는 탐사 로봇이 대부분의 탐사 작업을 수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광부 대신 지하 터널에 들어가는 지하 탐사 로봇은 주로 AMR(Autonomous Mobile Robots)이나 보행 로봇 등 모바일 로봇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탐사 로봇은 지하 터널 안에서 각종 장애물을 알아서 피해 가며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라이다 센서 등으로 주변 환경을 실시간 360도 디지털 지도로 작성하고 다중 스펙트럼 카메라로 특정 광물의 존재 여부를 조사하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탐사 로봇이 수집한 각종 데이터는 클라우드로 전송되고 클라우드에서는 향후 작업 계획 수립 등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도출한다.
또한 미래에는 채굴·적재·운반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의 안전 여부를 검사하거나 폐광 복구에 선행돼야 하는 위험한 현장 조사가 모두 탄광 검사 로봇의 임무가 될 수 있다. 카메라와 기타 센서들을 이용해 작업장 내 공기 오염이나 침수·붕괴 등의 각종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는 작업도 모두 검사 로봇의 몫이 될 것이다. 탄광 검사 로봇도 지하 탐사 로봇처럼 대부분 모바일 로봇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로봇 굴삭기는 지상에 쌓인 자원을 퍼 운반용 트럭에 적재하는 역할이다. 캐터필러 등이 개발하는 로봇 굴삭기(robotic excavators)는 카메라·레이더·라이다·관성 측정 장치(IMU) 등 다양한 센서와 AI를 이용해 작업장에 사람이나 장애물은 없는지, 토양의 어느 부분을 굴착할 것인지, 채취한 토양을 트럭에 어떻게 적재할 것인지, 굴착이나 적재 작업 과정에서 굴삭기의 전복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고도·경사 등을 감안한 안정적인 작업 자세를 어떻게 취할지, 다음 목적지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등 일련의 작업들을 모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작업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이미지 정보를 통해 채취할 토양의 건조 여부나 돌·진흙·자원 등을 구분·식별하고 토양의 형태를 분석해 적합한 굴착 방식을 결정할 수도 있다. 또한 적재 작업 과정에서는 운반용 트럭의 위치와 화물칸의 위치, 화물칸에 실린 탑재량 등도 스스로 인식해 작업한다.
운반용 로봇은 광산에서 사용되는 자율 주행 트럭은 화물칸에 광물을 싣고 정해진 장소로 운반하는 자율 주행차다. 일반적인 자율 주행차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라이다·레이더 등의 센서를 이용해 사람과 장애물 등을 피하거나 정지하면서 이동한다. 광산용은 가반 하중이 200~300kg대에 달하는 대형 차량인 점만 제외하면 일반적인 자동차와 거의 같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자율 주행 트럭은 광산 구역 내에서 운전사 없이 스스로 목적지를 왕복하며 광물은 운반한다. 단, 목적지나 이동의 경로 선정 및 변경은 중앙관제센터에서 담당하게 된다.
장비의 로봇화가 충분히 진행된 미래의 광산은 다양한 로봇들의 협업 현장이 된다. 자원 탐사 로봇이 자원 매장지를 열심히 찾아내면 터널 굴착기가 터널을 파고 자동 채굴 로봇이 들어가 채굴할 것이다. 채굴된 광물은 유압식 컨베이어(hydraulic mining conveyors)를 통해 지상으로 옮겨지고 지상에 쌓인 광물들은 로봇 굴삭기에 의해 자율 주행 트럭의 화물칸에 옮겨 실리게 된다. 화물칸을 가득 채운 자율 주행 트럭은 다음 목적지로 광물을 운반한다. 그동안 각 작업 현장마다 검사용 로봇이 작업 환경을 점검할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에서는 자율 주행 트럭, 시추용 CAD(CAD for drill planning), 굴삭기 제어 시스템(excavator control system) 등은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기술로 평가한다. 터널 굴착기(tunneling machines), 무인 컨베이어(mining conveyor), 자원 탐사 로봇, 로봇 굴삭기 등은 모두 최근에 떠오르는 기술이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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