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70년]각자도생의 시대… 동맹과 국익 사이 '균형점' 찾아야
신냉전 심화 속 중·러에 대한 '정책적 딜레마' 완화 필요
[편집자주] '한미동맹'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가 1953년 10월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하는 한미동맹은 한국전쟁(6·25전쟁)에서 숨진 미군 3만여명의 고귀한 희생으로 맺어진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와 그에 따른 도발·위협 속에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동맹'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미국·중국 간 패권 경쟁 심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국제정세 또한 한미 간의 협력 강화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는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 '뉴스1'은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서울=뉴스1)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오는 2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서울과 워싱턴에선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화려한 행사와 요란한 수사가 넘쳐나겠지만, 동맹이 처한 환경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갈수록 악화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한국과 미국이 세계 평화와 지역 안정을 위해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개최된다. 한국이 당면한 대외 안보 차원의 도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제체제의 분절화(systemic fragmentation) 혹은 파편화된 국제질서로 인해 모든 국가들이 자국 이익 위주로 격돌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국제 공급망 교란, 지정학의 귀환, 강대국 경쟁의 재현, 글로벌 거버넌스의 난맥상 등이 이런 환경을 만들고 있다.
둘째, '신냉전' 추세의 심화다. 이미 진행 중인 미중 전략경쟁 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은 서구 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초래해 세계 질서가 빠르게 '민주주의 대(對) 권위주의' 체제의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중 공히 자국에 유리한 전략적 협력 세력 규합 노력을 강화하면서 한국도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가 빈발할 전망이다.
셋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양한 돌발 충돌 가능성이 커졌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붕괴했고, 대만해협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더 커졌다. 아·태 지역의 안보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일본의 '안보 3법' 개정에 따른 새로운 군비경쟁 추세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글로벌·지역적 차원에서 다중의 불확실성에 직면한 한미동맹은 지난 70년간의 성공이라는 평가에 안주할 여유가 없고, 앞으로 동맹의 앞길에 놓인 숨은 암초들을 잘 피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한미동맹의 대부분 '바이탈'이 건전하다 해도 당면한 현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트럼프 2.0'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이든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시대와 별 차이가 없을뿐더러 일부는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협력 압박, 중국 견제에 대한 동참 요구 등을 둘러싼 한미 간 시각 차이는 동맹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갈수록 구체적으로 진화하는 북핵 위협 앞에서 막상 미국이 공언한 '확장억제'의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국내의 독자 핵개발 지지 여론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국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대국이지만 한국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는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동맹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당면한 안보적 도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한미 양국의 협력 방안을 도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의 여러 이슈들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정책적 딜레마를 완화하는 게 이번 회담의 최대의 목표가 될 것이다. 이는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반도체나 에너지 안보 같은 경제안보 분야 모두에 해당한다.
첫째, 대중국 정책 조율은 당분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 사안이 될 것인 만큼 한국도 대중국 정책에 대한 입장을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미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맹과 우방들에 중국 견제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견제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는 동맹과 우방들이 각자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북한 핵·미사일 대비 확장억제 공고화에 진전을 이뤄야 한다. 최근 북한의 핵태세는 작년 '핵무기법' 제정에 이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현지지도를 통해 전술핵탄두와 핵 무인수중공격정(핵어뢰)을 공개하는 등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이로 인해 한국인들이 체감하는 핵위협은 심각하고 독자적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는 여론도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한국은 포괄적 국익의 관점에서 독자 핵개발보다는 미국의 확장억제를 제도화·구체화하는 한편, 독자적인 비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셋째, 인도·태평양 전략을 포함해 동맹의 지역 차원 역할 확대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인도·태평양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바람직한 질서와 규범이 작동하는 규칙 기반의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 크게 보면 그런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속엔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영토주권 침해뿐만 아니라 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것도 포함된다.
넷째, 경제안보 협력과 관련해 한미 양국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미 양국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CHIP4),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한국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60% 이상이 중국 시장에서 팔리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한국 자동차 수출업체의 불이익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동맹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옳은 방식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질서는 요동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개최되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현안 이슈 외에도 한미동맹의 방향성에 대한 굳건한 공감대를 보여줘야 한다. 동맹의 이익과 한국의 국익 사이에서 바람직한 균형점은 무엇인가. 그 해답을 찾는 것이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 최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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