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프'→'라이스보이 슬립스'…美 영화계는 왜 韓 이민자에 열광하나

김보영 2023. 4.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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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쓴 미드 '비프', 넷플릭스 전세계 2위
분노한 아시안 남녀 주인공…로튼토마토 평점도 최고 수준
'라이스보이'→'패스트라이브즈', 한국계 캐나다인 연출
아시안 서사, 오리엔탈리즘 벗어나 주류로 부상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난폭 운전을 하며 온갖 분노를 쏟아내는 미국의 한인 2세 노동자, 1990년 아들과 단둘이 낯선 캐나다 땅을 밟은 한국인 엄마,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20여년 후 뉴욕에서 다시 만난 두 남녀. 요즘 북미 콘텐츠 시장을 사로잡은 드라마 및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산업의 중심 할리우드가 ‘한국’에 흠뻑 매료됐다. 한국인 이민자들이 주인공이거나 그들의 삶과 애환을 주제로 내세운 영화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상업적 흥행은 물론 예술성까지 두 마리를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지난 6일 넷플릭스로 공개된 미국 시리즈물 ‘비프’(성난 사람들)는 공개 5일 만인 11일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2위에 등극했다(플릭스패트롤 집계 기준). 한국에선 4위에 그쳤지만, 넷플릭스 본진인 미국에서 1위, 영국과 태국, 호주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빠르게 화제성을 독점했다. 미국에서 제작했지만 한국인 이성진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았다. 한국계 배우인 스티븐 연과 데이비드 최를 비롯해 여주인공 앨리 웡 등 출연 배우가 전부 아시아인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남자 대니(스티븐 연 분)와 성공했지만 삶은 만족스럽지 않은 여자 에이미(앨리 웡 분)가 난폭운전으로 엮인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미국의 영화 비평 전문 웹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최고 평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화제다. 전문가 추천율 99%(이하 100% 만점), 일반 관객 추천율 92%를 기록 중이다. 멜라니 맥팔렌드 TV비평가는 ‘비프’에 대해 “21세기 초 사회에서 쉽게 보이는 분노 등의 복합적 감정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며 “아카데미 수상 목록에 올라야 한다”고 극찬했다.

국내에서 19일 개봉한 한국계 캐나다인 앤소니 심 감독의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캐나다로 이민한 한국인 엄마와 어린 아들의 그립고 따스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은 캐나다 영화계의 영예로운 상 중 하나인 토론토비평가협회 캐나다 작품상을 올해 초 수상했다. 아메리카나 필름 페스티벌 비평가상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영화제에서 23관왕을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모든 게 낯선 타국 땅에서 저임금노동,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어렵게 정착했던 그 시절 이민자들의 애환과 서로가 전부였던 모자의 애틋한 정을 담담히 표현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연출을 맡은 ‘패스트 라이브즈’(전생)는 미국 제작사 A24와 한국기업 CJ ENM이 손을 잡고 공동 투자배급한 영화다. A24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비프’를 만든 제작사다. 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 소재와 배우도 전부 한국과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추억을 쌓은 남녀가 시간이 흐른 후 뉴욕에서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배우 유태오와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가 주인공이다.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지난 2월 열린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에도 진출해 작품성과 완성도를 입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영화에 5점 만점에 4점을 부여하며 “섬세하게 슬픈 로맨틱 드라마로 진정한 성공작”이라고 찬사를 남겼다. 연내 북미 개봉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공개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비교하면 이 변화가 고무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과거 미국에서 이민자들을 소재로 했던 작품들은 철저히 서양인의 시각에서 동양인을 대상화한 ‘오리엔탈리즘’이 팽배했다”며 “2000년대를 지나 국경이 허물어지고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융합’의 가치가 시장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예전의 서구중심적 가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문화의 산증인인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지닌 중립적이면서 신선한 시각이 최근의 시대적 분위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역시 “최근 몇 년 간 한국이 콘텐츠 시장에서 티켓 파워을 가진 주체로 떠오른 만큼,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들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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