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선도 구단의 사라진 품격, 함께 실종된 '경영 리더십'

이성필 기자 2023. 4. 20.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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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들의 비판에 직면한 전북 현대, 수원 삼성의 홈경기 풍경은 스산함 그 자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팬들의 비판에 직면한 전북 현대, 수원 삼성의 홈경기 풍경은 스산함 그 자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구단 경영진을 위한 교육 과정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최고경영자(CEO) 아카데미로 사, 단장들이 대상이다. 1년 중 상, 하반기에 10시간씩 2회로 나눠 운영하는데 목적은 '매니지먼트 인사이트 함양', '리더십 강화'가 목적이다. 대충 프로구단 경영 능력을 키워주겠다는 뜻이다.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이 보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법하다.

현재 K리그1, 2 23개 구단 CEO 모두 이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는다. 기업구단의 경우 계열사에서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스포츠 구단 경영에 관심이 많은 임원이 사, 단장을 맡는다. 시도민구단도 지자체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거나 선거 승리 전리품, 외부 공모를 통해 들어오는 경영인이 프로구단을 이끈다.

'CEO 아카데미'에서 뭘 배워 나오십니까?

'프로구단 경영'은 일반 기업 계열사나 지자체 운영과는 성격이 다르고 특수한 면이 있다. '자생'을 외치는 한국 프로스포츠가 돈을 벌지 못하는 고민을 안고 있어 여전히 이윤 추구나 목적 없이 비용을 받아 지출하는 '사회공헌'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 보니 더 그렇다.

그래서 프로연맹은 제대로 리더들을 교육해 합리적 구단 경영과 연속성을 위해 CEO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과거 구단을 망치고 떠난 숱한 사례가 반면교사였다. 물론 이 교육을 두고 일각에서는 "특정인을 위해 골프나 치는 모임", "사교 클럽이나 마찬가지"라고 격하한다.

하지만, 잘 교육받으면 괜찮은 CEO도 나온다. 축구전용경기장 DGB대구은행파크 산파역을 하며 널리 알려진 경기인 출신 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는 숱하게 거론, 제외하더라도 현재 K리그 CEO 중 리더격인 김광국 울산 현대 단장은 대표성을 띄기에 충분하다.

2014년 부임 당시 그는 모기업 현대중공업에서 언론 홍보 담당이었다. '2인자', '만년 2위'라는 어려움 중에서도 기다리고 기다려 지난해 K리그 우승을 맛봤다. 단순히 성적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홈구장 문수축구경기장의 식음료 판매 등 팬들이 누릴 권리도 잘 조성해 놓았다. 본인에게 직접 자평을 부탁하기가 그래 주변인들에게 평가를 부탁하자 익명을 원한 한 인사는 "CEO 아카데미에서 배워 오셔서 잘 적용하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과거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이 순차적으로 해결됐기에 그렇다"라고 전했다.

'교통 불편한 시 외곽의 경기장'은 성적이 나면 알아서 찾아오는 '팬 친화적' 장소로 달라졌다. 지난 3월 콜롬비아와의 A매치에서도 김 단장은 구단 경영진을 이끌고 문수축구장 외곽을 돌았다. 축구협회의 마케팅을 참고하기 위함이었다. 김 단장과 같이 있던 한 관계자는 "구단이 구축한 시설물이 잘 돌아가는지, 어떤 물품이 판매되는지 알기 위해 순시(?)를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프로구단 경영, 마케팅을 잘 몰랐던 김 단장의 성장과 변신은 귀감이 되고도 남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김 단장을 배우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김 단장에게도 선수 영입 등 아직 배울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울산 현대 홈구장 문수축구경기장 풍경은 축구친화적이. ⓒ한국프로축구연맹

프로 구단 경영 특수성 이해하고 호평…'KKK' 김광국 울산 현대 단장

흐름 좋은 울산과 달리 몇몇 구단은 CEO의 리더십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좋지 않은 성적으로 선수단, 사무국, CEO 리더십 모두 파열음을 내는 전북 현대, 수원 삼성이 그렇다.

전북은 허병길 대표이사가 2019년 11월 부임하면서 기존 백승권 단장과 역할이 겹치는 것 아니냐는 '옥상옥(屋上屋)' 우려가 있었다. 통상 전북의 대표이사는 현대차 국내영업부문장이 비상근, 단장이 사무국의 리더였다. 이미 수원이 이석명 전 단장 퇴임 후 명예직이었던 대표이사 자리가 상근직으로 바뀌면서 기존 상근 단장과 업무가 겹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던 전례가 있어 전북도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컸다.

2020년 우승을 이끈 허 대표를 보좌했던 백 단장은 성적 부진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난해 4월 사임했다. 일단 행정에서 옥상옥 우려는 사라졌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던 백 단장의 부재는 곧 허 대표의 불통 논란으로 이어졌다. 김상식 감독이 원하는 선수 영입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행착오도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 5일 기자가 이 코너에서 '병들어 가는 전북 현대…처방전은?'이라는 기사로 구단의 체계 붕괴를 보도하자 허 대표는 전화를 걸어와 오해가 있다며 항변했다. 그의 주장을 반론권 차원에서 해당 기사에 반영해 준 뒤 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전 시작 전에 만나 그의 가슴에 있는 생각을 들었다.

허 대표의 설명은 이랬다. "구단에 와서 보니까 모든 업무가 수의계약이라 경쟁 입찰로 바꿨다. 또, 직원들 결재 구조도 팀장-부단장-단장을 거쳐오니까 단순하게 정리하기 위해 실무 직원이나 부문장이 대표이사에게 바로 보고 하게 바꿔 놓았다. 같은 업무를 오래 했던 경우도 있어 순환 보직 체제로 돌리다 보니 이런저런 말이 나온 것이다. 해당 직원이 휴가라도 가면 누가 공백을 메우겠느냐"라며 효율성을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마케팅 전문가라고 구단을 통해 자신을 소개했고 전무라는 높은 직위에서 부사장까지 올라왔으니 충분히 허대표의 경영 철학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허 대표는 직원들의 업무 수준이 자신의 기준에서 많이 떨어진다며 "이제 30~40% 정도 올라왔다"라고 평가했다. 한때 현대차 계열사로 보내서 다른 일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 의도야 좋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프로구단에서 성장한 직원들이 그룹 계열사로 간들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고 해석 가능한 말이었다.

프로구단은 모기업과 연고지 자치단체, 각종 유관 기관과의 협력, 협업 사업이 많아 '관계 맺고', '홍보-마케팅을 잘해서', '관중을 모으는' 능력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 '홍보-영업을 잘해서', '고객을 불러 모으는' 현대차의 세일즈와 결만 조금 다르지 과정은 비슷하다. 구단 업무가 효율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거두지 못한다면 프로 스포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모기업이 확실하게 지원하자 선수들은 뛰고 직원들이 열심히 움직이니 CEO의 리더십 공백이 보이지 않는 대전 하나시티즌. 최근 가장 분위기 좋은 구단 중 하나다.

존재감 사라진 리딩 구단-방향을 모르는 리딩 구단 '고민이 깊다'

허 대표는 김상식 감독과 더불어 팬들의 퇴진 운동의 전면에 거론되고 있다. 일단 사과는 했지만, 후속 해결책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적어도 햇수로 5년 차인 K리그 리딩 구단 CEO라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대책을 내놓든가 결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언론이나 팬들에게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야망 없는 프런트는 나가라'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수원은 최근 몇 년 동안 대표이사나 단장이 외부로 '수원이 무엇을 하고 있다'라고 알린 기억이 없다. 하다못해 언론 간담회라도 열어 '구단이 이렇게 방향을 잡고 갑니다'라는 말이라도 해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되고 예산 활용이 쉽지 않아 과거의 영광을 누리기 어려운 것을 수원 팬 아무도 모르지 않지만, 최소한의 성적과 경기력이 나오지 않고 발전 계획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함은 자동 반사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된 이병근 전 감독은 지난 2월 제주도 전지훈련 중 기자에게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통상 구단이 살피는 좋은 선수가 있고 영입의 필요성을 느껴지면 감독은 관계자에게 전한다. 그러면 올라간 보고가 대표이사 선에서 영입 여부를 선택해 해당 선수와 접촉,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민구단의 구단주인 자치단체장이나 모기업 총수에게는 상징적인 보고로 끝낸다.

그러나, 옥상옥이 여기서 등장한다. 수원은 선수 영입 과정에 모기업인 제일기획을 거쳐야 한다. 이 감독이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구단에서 낙점해도 제일기획의 검토 과정이 떨어지지 않으면 원했던 선수는 그 사이 다른 구단의 유혹에 넘어간다. 대표이사나 단장이 제일기획 관계자와 싸워서 구단의 독립성을 보여주려는 이해, 설득 등의 노력이라도 했다면, 일선 전쟁터 지휘관인 감독이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수원이 감독 갈아 끼우기로 문제가 해결될 구단은 아니라는 것은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라면 눈빛으로도 이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앞서 이임생, 박건하 전 감독도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 감독 대행과 선수들이 똘똘 뭉쳐 극복하는 것도 구시대적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과거 숱한 사례가 증명한다.

매탄중, 고로 대표되는 유스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줬다. '오현규 육성해서 셀틱에 팔아 번 돈이 어디 갔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이 쉽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영입 자원과 내부 육성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CEO가 무엇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몰라서 일선 직원에게 맡긴 것이라면 더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서랍 깊숙이 보관된 구단 발전 계획이라도 다시 꺼내 확인해야 할 판이다.

현재 리딩 구단 중 하나이자, 과거 리딩 구단이었던 전북-수원의 경영 리더십 위기는 K리그와 한국 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화내빈이라고 늘 시즌 초반에는 관중이 몰리다 일정 시점부터는 떨어졌다. 현장에서 지도자와 선수들이 명품 경기를 만들고 직원들이 홍보-마케팅해도 리더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끝이다. 월드컵 16강을 미끼로 대사면 하려다 쏟아지는 비판을 받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이미 보인 오판을 굳이 구단들이 따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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