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방암 수술 후 미술관에 갔다...아르코미술관 '기억·공간'전

신진아 2023. 4.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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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품 앞에서 문승현(좌)과 김경민(김경민)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아나 색으로 물든다>의 퍼포먼스 영상 콘셉트 테스트

퍼포먼스 영상 연출하는 김경민 작가와 퍼포먼스 준비하는 김명신과 문승현

퍼포먼스 영상 연출하는 김경민 작가와 퍼포먼스 준비하는 김명신(좌)과 문승현(우)

[파이낸셜뉴스] “지난 2015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걸어서 이곳 아르코미술관에 왔어요. 그 후 5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그 기간 살아남은 저와 달리 죽은 여류작가가 여럿 있었어요. 이번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을 준비하면서 그때 생각이 유독 많이 났습니다.”(김경민 작가)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미술관이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을 오는 7월 23일까지 개최한다. 미술관의 공간·장소성을 동시대 작가들의 경험·사회적 기억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설치 등 국내외 작가 9명(팀)의 신작 23점을 선보인다. 비단 전시장뿐만 아니라 아카이브 라운지, 프로젝트 스페이스, 야외 로비, 계단, 통로, 화장실 등 미술관 곳곳에 작품이 전시·설치됐다.

전시장 2층에는 입구가 두 개인 흰색 가벽이 세워져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두 개의 화면에 서로 다른 영상이 흘러나온다. 오른쪽에는 아르코미술관을 상징하는 빨간 벽돌 건물을 중심으로 계단 이미지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다른 한쪽에선 장애가 있는 한 남자가 미술관의 여러 공간에서 이상한(?) 행위를 한다. 로비 바닥을 쓰다듬거나 옥상에서 점프를 하는 식이다.

비디오 속 주인공은 화가이자 기획자, 퍼포머, 작곡가 그리고 시인으로 활동 중인 문승현 작가다. 문 작가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담은 이는 미디어아티스트 김경민 작가다. 문 작가는 장애와 건축, 도시, 그리고 사회적 예술을 이야기하고 다원적인 매체 협업으로 전시와 공연을 하는 '옐로우닷컴퍼니' 대표고, 문 작가와 협업해온 김 작가는 나다 페스티벌 총연출자다.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가 있었던 문 작가와 달리 김 작가는 30대 초반 유방암 절제술과 항암 치료를 계기로 장애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수술 후 임시 장애인증명서 받고 기분이 이상했어요. 정작 혜택은 별로 없어서 아쉬웠는데요.(웃음) 장애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 장애인이 되는 것은 정말 다르더라고요.”

1947년생인 엄마의 청각 장애도 장애 관련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다른 이유다. 모친은 한국전쟁 중 포탄소리로 한쪽 귀의 청각을 거의 잃었는데도, 최근까지도 자신의 장애를 외면하고 부정했다.

“사람들에게 약점을 잡히기 싫어하셨어요. 자신은 비장애인과 같다고 끝까지 자존심을 부렸죠. 하지만 그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겼어요. 엄마의 장애를 알길 없는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일쑤였고, 밀접 관계인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김 작가는 “엄마의 장애 인정 여부는 감정적 신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였다”며 “엄마를 설득하는데 거의 10년 걸렸다”고 돌이켰다. “2015년부터 저와 문 작가가 함께 한 작업들을 보면서 엄마가 서서히 마음을 바꿨어요. 스스로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편견이 깨졌다고 하셨죠.”

■ "건축이 변하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최근 미술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문턱을 낮추는 등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술관 관람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김 작가는 “권위가 중시되는 시기에 만들어진 아르코미술관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아니다. 유리창도 안쪽으로 향해 있어 내부를 보여주지 않고 가린다는 느낌이 있다. 문승현 작가와 이 건축물의 폐쇄성을 격파하고 싶었다”며 신작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2023, 2채널 비디오, 기획 및 퍼포먼스 김명신, 첼로 연주 김지현)에 대해 설명했다.

빨간 벽돌에 계단이 회오리처럼 도는 영상물과 문승현 작가의 퍼포먼스는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그는 “아르코미술관 계단을 보면 미로같은 느낌을 준다. 정돈된 직사각형이 모여 있으나 마치 트랩을 놓은 것처럼 꼬인 느낌이 있다. 그래서 그 계단을 주요 이미지로 삼고 아르코미술관의 직선적인 이미지와 대응되게 휘어지고, 기울어진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미술관에서 하지 않을 행동을 통해 건축 설계의 물리적 한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미술관은 보통 안에서 어떤 작품을 보는 공간이지만, 우리는 안에서 밖으로 시선을 이끌고, 작품이 아닌 사람을 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비디오 영상물에 사용된 음악이 슬픔과 애잔함을 자아낸다고 하자 “원래 말랑말랑하게, 서정적이고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우리가 말랑말랑한 사람이 아니라 기획 의도와 다르게 슬프면서도 그로테스크하게 나온 것 같다”며 "우리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며 웃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은 미술관을 둘러싼 기억을 동시대 작가들의 눈을 통해 조명하고 이 기억들을 다시 미술관으로 소환함으로써 미술관의 공간을 연결하고 활성화하는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언론 공개회를 1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갖고 주요 전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대에 따른 사회 변화를 목격하고 동시대 미술에 주요한 영향을 주고받은 아르코미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결의 ‘기억’에 주목해 역사 연구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의 역사를 사유하고 기록하는 예술

문승현, 미술관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2023)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문 작가는 이날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통 의지를 꺾지 않고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 만난 비장애인인 기자는 그의 말을 좀체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난 8년간 문 작가와 작업한 김 작가는 문 작가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 문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이번 작품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건축은 종합예술이고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아르코미술관 역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건축물로서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관람하기 어려워요. 저는 건축을 통해 장애를 이야기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종합예술이자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이 변하면,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유연하게 바뀔 것이라고 봅니다. (건축 설계·구조의 변화는) 일종의 치유 과정입니다.”
#장애 #전시 #미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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