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올라가 시료 채취할 석박사급 찾습니다"... 환경부, 구인난에 골머리

오지혜 2023. 4. 20.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통합관리사업장 사후관리 전문연구원 구인난
처우·노동환경 열악해 채용 어려워... 이탈도
"부모님 걱정하실까 무슨 일하는지 말도 못 해"
환경부, 처우 개선 위해 수당 신설 등 노력
구조적 개선도 필요... "연구 수행 중"
통합관리사업장 사후관리를 맡은 전문연구원들은 굴뚝에 난 측정공까지 올라가 시료를 채취한다. 사진은 3월 A시에 위치한 한 소각장 굴뚝 측정공 높이에서 내려다본 모습. 오지혜 기자

"이 정도면 호텔급이에요. 굴뚝 외벽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사업장이 얼마나 많은데요. 발전소는 50m 높이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화장실은 갈 엄두가 안 나요. 밥은 밧줄로 올려서 먹고요. 현타(현실 자각 타임) 오죠."

지난달 14일 A시 도심에 위치한 한 쓰레기 소각장. 우뚝 솟은 굴뚝 내부에서 꼭대기로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응시하던 지방환경청 연구사 B씨가 이렇게 말했다. 27m 높이에 있는 측정 지점까지 올라가기 위해 그는 10㎏에 달하는 '임핀저(impinger·공기 중 혼재하는 물질 채집 시 사용하는 흡수관)' 박스를 들고 앞장섰다. 맨몸으로 올라도 숨이 턱턱 차오르는 경사에,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면 점점 바닥이 아득해져 갔지만 그는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B연구사는 발전소, 소각장, 철강·화학 공장 등 대형 사업장에서 기준치 이상의 대기오염물질이 나오는지 검사하는 일을 한다. 오염물질의 측정·분석을 위해 직접 굴뚝에 올라 시료를 채취하는 것도 그의 업무다. 그런데 무거운 장비를 안고 위험천만한 굴뚝을 오르내려야 하는 데다 처우도 열악해 함께 일하던 동료 여럿이 그만뒀다. B연구사도 원래 이 업무 담당자가 아니었지만, 인력 부족으로 손을 보탠 지 오래됐다.


굴뚝 오를 '산타'가 없다... 통합관리사업장 사후관리 난항

통합관리사업장 사후관리를 맡은 전문연구원들은 굴뚝에 난 측정공에 올라가 시료를 채취한다. 3월 A시에 위치한 한 소각장 굴뚝의 모습. 오지혜 기자

19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통합관리사업장의 사후관리를 맡은 지방환경청 등은 대기오염물질을 측정·분석할 전문연구원 채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합관리사업장은 대기·수질 등 오염원별로 제각각 이뤄지던 관리 체계를 2017년 하나로 통합한 '통합환경관리제도'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이다. 폐기물처리업, 발전업, 철강업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큰 19개 업종의 대형 사업장이 그 대상이다. 정부는 제도가 안착되는 2024년 이후 전국 1,300곳의 사업장이 사후관리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리해야 할 사업장은 크게 늘고 있지만, 오염물질의 검사를 담당할 연구원채용은 매우 어렵고 채용해도 이탈이 잦은 상황이다. 이는 열악한 처우와 노동 환경 때문이다. 계약직인 이들은 각 급(나~라)에 따라 화학·화학공학·환경 등 관련 분야의 학위와 기사·환경측정분석사·산업기사 등 자격증이 필요하다. 둘 중 하나만 필요한 직급은 가장 낮은 '마'급뿐이다. 갖춰야 할 자격 수준이 높지만 수당을 뺀 월 보수는 200만~300만 원 정도다. C연구원은 "박사 학위가 있어도 연봉이 3,500만 원 수준인데, 민간업체로 나가면 두 배씩 뛴다"면서 "지원자가 없어 퇴사자보다 직급 수준을 낮춰 채용 공고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통합관리사업장 사후관리를 맡은 전문연구원들은 굴뚝에 난 측정공까지 올라가 시료를 채취한다. 사진은 3월 A시에 위치한 한 소각장 측정공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직원들의 모습. 이날은 지방환경청 측에서 취재를 위해 현장을 공개한 것으로, 전문연구원들이 평상시 채취하는 대기오염물질이 아니라 다이옥신 농도 분석을 위한 시료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대기오염물질 분석을 위한 시료채취 과정도 형태는 같다. 오지혜 기자

특히 시료 채취를 위해 굴뚝에 직접 올라가야 하는 것이 이들에겐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기체 채취를 위해 뚫려 있는 측정공은 굴뚝 중간쯤 설치된다. 안정적인 유속이 확보돼야 실제 배출되는 기체의 오염 정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측정공까지 오르는 길 자체가 험난한 경우가 많고, 무거운 장비까지 함께 옮겨야 해 작업 난이도는 '최상급'이다.

B연구사는 "여성 한 명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계단이 좁고, 구조상 몸을 숙여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며 "보통 35종 물질 분석 기준으로 한 사업장 채취에 2, 3일 정도 걸리는데 하루에 4, 5번씩 오르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14번의 공고 끝에 채용한 D연구원은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을 안 했다. 출장을 많이 다닌다는 정도만 아신다"고 했다.

비교적 처우가 좋다는 민간 기업에서도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민간 측정대행업체 관계자는 "기사 자격을 요구하는데, 일은 기능직에 가깝고 비전도 없어서 젊은 직원들이 잘 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난이 심해 현장 측정 인력의 몸값이 오를 정도"라며 "업체들끼리 가격경쟁도 치열해 출혈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대안 마련 단계는... "아직 연구 중"

통합관리사업장 사후관리를 맡은 전문연구원들은 굴뚝에 난 측정공까지 올라가 시료를 채취한다. 사진은 3월 A시에 위치한 한 소각장 굴뚝 측정공의 모습. 이날은 지방환경청 측에서 취재를 위해 현장을 공개한 것으로, 전문연구원들이 평상시 채취하는 대기오염물질이 아니라 다이옥신 농도 분석을 위한 시료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대기오염물질 분석을 위한 시료채취 과정도 형태는 같다. 오지혜 기자

환경부도 이런 사정을 알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방안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측정·분석 업무를 공무원이 하다가 부족하니 임시직을 채용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아 외부 용역 업체에 위탁을 맡기기도 하는 상황"이라면서 "주 업무는 측정·분석이지만 시료 채취를 위해 굴뚝에 올라가야 하는 힘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내부적으로 협의해 이달부터 월 5만 원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개인보호장치 등 지원 △안전지침 마련 등이 이뤄졌다.

연구원들이 직접 굴뚝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적인 해결책도 찾고 있는데 아직은 연구 단계다. △광학 장비를 이용한 원격 측정 △간접인자를 통한 오염물질 배출연구 등을 연구 중인 국립환경과학원은 "올해부터는 지상과 가까운 지점에서 채취된 시료가 측정공에서의 측정값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