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에너지 가격 정상화, 미룰수록 일 커진다
정부가 4월 말 종료 예정이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4개월 더 연장했다. 인하 폭도 그대로 유지했다. 정부는 고물가와 민생고 때문이라지만 내년 총선용 선심 행정이라는 것이 솔직한 분석일 것이다. 전기료 인상을 놓고 한없이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한전 적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올해부터 에너지 가격을 정상화하겠다고 강조했는데 그 말과 반대로 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로 정하는 ‘정치 요금’으로 만든 결과, 에너지 과소비, 무역수지 적자, 채권시장 불안, 송전망 투자 중단, 세수 구멍 등 갖가지 부작용이 벌어졌다. 한전은 원가 100원에 생산한 전기를 70원에 팔면서 지난해 32조원의 적자를 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회사채를 37조원어치나 발행하는 바람에 채권 시장이 마비됐다. 싼 전기료 탓에 우리나라 1인당 전력 소비량은 OECD 3위일 정도로 에너지 소비가 과도하다.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이 사상 최대 무역 적자의 주요인이 됐다.
지난해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만도 5조4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세수 펑크 규모가 20조원을 웃돌 전망인데, 유류세 인하 폭을 줄이는 것조차 손대지 않는다. 한 해 30조원씩 적자가 나는 한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코로나 사태와 고유가가 겹친 2021~2022년 2년간 독일,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전기료를 2~3배씩 올렸다. 고통스럽더라도 이렇게 해야 더 큰 부작용을 막는다. 그런데 한국의 전기료 인상률은 32%에 그쳤다. 전기 소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한전은 만신창이가 됐다. 전기료 유류세 결정을 미루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것도 근거가 없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터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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