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여도 예뻐”… 투병환자 응원 1300개 스티커
초로(初老)의 부부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별관 1층 복도 앞에 멈춰섰다. 머리가 희끗한 남편이 짐 가방을 내려놓고 아기 손바닥만 한 분홍 스티커에 사인펜으로 글자를 써 벽에 붙였다. ‘ΟΟ엄마. 당신은 까까머리여도 예뻐.’ 갈색 비니 모자를 깊이 눌러쓴 깡마른 체구의 여성이 그의 옆에서 빙그레 웃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부터 구경선 일러스트 작가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구 작가는 시각·청각장애를 딛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 ‘한국의 헬렌 켈러’로 불리는 인물. 그의 작품이 걸린 복도 벽에 짧은 글을 써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을 마련했는데, 스티커 1300여 개가 화단에 활짝 핀 꽃처럼 빼곡히 붙어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글이 많았다. ‘아기 천사 Ο아. 사랑과 예쁨만 받아도 모자랄 시기에 병원이라는 낯선 곳이 얼마나 무서울까. 아빠가 대신 아파 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 ‘우리 ΟΟ이. 항암도 양성자도 잘 이겨내고, 매일 엄마랑 같이 웃고 살자’ ‘미래 손주야. 꼭 살아서 만나자’....
자녀들이 부모에게 쓴 글도 많았다. ‘힘들지만 엄마가 지금 내 옆에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난 너무 감사해. 기적은 있으니까 한번 해보자. 웃으며 집에 가자’ ‘아버지, 하늘에선 편안하고 아프지 마세요. 사랑하는 막내딸이’.... 자신을 ‘무뚝뚝한 아내’라고 한 여성은 ‘정ΟΟ씨. 힘든 항암 잘 이겨내고 70까지 같이 삽시다’라는 쪽지글을 남편의 회복을 기원하며 붙였다.
스티커엔 병원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병원 다닌 지 10년째. 이젠 힘들다’ ‘뇌종양 수술이지만 하루하루 행복합니다.’ ‘유방암 환우님들! 민머리라 해도 우린 이쁜 여자, 엄마, 딸이에요. 이겨내요.’ 한 의료진은 자신의 바람을 이렇게 썼다. ‘모두 건강하셔서 제가 실직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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