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나선 여당 “전세 사기 피해자에 주택 우선매수권 검토”

정순우 기자 2023. 4.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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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특단대책 주문에… 당정, 지원안 쏟아내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30대 여성 A씨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이송중 사망했다. 이날 오후 이 주택 각 층에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피켓이 붙어 있다. /박상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특단 대책을 주문하면서 정치권에서 경매 중단, 우선매수권 부여 등의 방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전세 사기 피해자 두 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전국 단위의 대책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구제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책들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이라는 자산 특성상 권리관계가 복잡해 피해자들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은행 등 금융기관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저소득층 등 다른 취약 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 젊은이 수천명이 사기를 당해 모든 자산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것은 사회적 재난 수준인 만큼,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초저금리·장기 대출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피해자들이 재기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돕는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18일 전세 사기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 각 가구 창문에 보증금 반환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종찬기자. 그래픽=백형선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원장은“전세 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與 “피해자 우선매수권 검토”

국민의힘은 19일 ‘전세 사기 피해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경매에 넘어간 주택을 피해자가 우선적으로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권리(우선매수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가 피해자에게 보상을 먼저 해주고, 이후 사기범에게 돌려받는 ‘선(先) 보상 후(後) 구상권 청구’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20일 국토교통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등과 당정 협의를 거쳐 두 방안을 포함한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TF 위원장을 맡은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우선매수권은 법 개정 사안이라 당정 협의에서 필요한 법안의 후속 대책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처럼 좀 더 즉각적인 지원 방안을 정부에 마련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정치권 일부와 시민단체 등에서 나오는 ‘피해 주택을 국가가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박 위원장은 “예산이 피해자 구제가 아니라 채권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도 이날 범부처 TF 회의를 열고 은행 및 상호금융권에 전세 사기 주택의 경매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의 주소를 대출 취급 기관에 전달해 피해자가 원하면 경매를 유예하고, 경매가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매각을 연기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피해자들에게 전세대출 이자를 2년간 전액 시(市)가 부담하고, 만 18~39세 이하 피해자에게는 1년간 월 40만원씩 월세(주거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전세 사기 피해 세대에 이사비 150만원도 지원할 계획이다. 인천에만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이 3000가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집중된 H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호소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혜진 기자

◇현실성 떨어지고 특혜 시비 우려도…”재기 희망을 줘야”

최근 거론되고 있는 대책들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경매 유예 요청에 대형 금융사들이 동참한다 하더라도 사채업자 등 다른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수도 있다. 일부 피해 주택은 금융사들이 이미 채권을 추심업체에 넘겼다. 윤 대통령의 발언 바로 다음 날인 19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전세 사기 피해 주택 한 채가 낙찰됐는데, 대부업체가 경매에 부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동에 위치한 서울시 전·월세 종합지원센터에서 한 상담 직원이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김지호 기자

우선매수권의 경우, 시세보다 싸게 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게 시장원리에 반한다는 지적이 있으며, 향후 시세 상승으로 수익이 발생하게 되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김창범 변호사는 “특별법 형태로 추진할 수는 있겠으나, 구체적인 매입 조건이나 방식에 따라 많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방안 역시 재정 부담이 크고,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남모씨와 1100여 채의 주택을 임대하다 작년 10월 사망해 논란이 된 ‘빌라왕’ 김모씨 등 두 사건의 피해자만 더해도 4000명에 달해 수천억원의 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피해자들이 살던 집을 경매에서 낙찰받을 수 있도록 저금리 대출을 장기간에 걸쳐 지원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금 가장 필요한 건 피해자들에게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정부 공적기금이나 보증을 활용해 피해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의 금리에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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