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전기에 통상 마찰까지 터졌는데… 우린 물 쓰듯 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세계 하위권, 전기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사이트인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 당 135원으로 147개국 중 96위를 기록했다.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덴마크(827.5원)의 16.3% 수준이었다. 우리보다 전기요금이 싼 곳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와 같은 산유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으로, OECD 회원국 중에는 튀르키예가 유일하다. 정부는 지난해 4월 9년 만에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한 뒤 올해 1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32.6% 올렸다. 그런데도 지난해 연평균 가정용 전기요금은 kWh당 121.3원으로 10년 전인 2012년(123.7원)보다도 쌌다.
비정상적으로 싼 전기요금은 전기를 물쓰듯하는 에너지 과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지난해 유럽 등 주요국은 절전에 정부와 온 국민이 동참해 전력수요를 줄인 반면,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요금 인상에도 여전히 해외보다 싼 값에 전기를 쓸 수 있어 일상 곳곳에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저렴한 전기 요금은 국제 통상 분쟁으로도 비화하고 있다.
◇값싼 전기요금 한국 가정용 147국 중 96위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률은 18%로, OECD 38개 회원국 중 36위다. 근데 전력 소비는 미국·일본에 이어 3위다. 최근에도 서울 강남역, 홍대입구역 등 주요 번화가엔 인적이 드문 밤늦은 시간까지 간판 네온사인, 전광판 같은 거리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공조명에 의한 오염이 G20(주요 20국) 가운데 이탈리아와 함께 최악으로 나타났다. 각종 네온사인, 상점·빌딩 조명 등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다. 자연광이 충분한 대낮에도 복합 쇼핑몰, 다중 이용 시설 안에선 겹겹이 조명을 켜놓고, 대표 건축물이나 조형물에 형형색색의 미관용 조명이 밤마다 빛을 발한다. 서울 여의도 등 사무실 밀집 지역엔 퇴근 후 직원이 없는데도 전체 사무실 불을 밤새 켜 놓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유럽은 정부와 전 국민이 함께 절전 노력에 동참했다. 독일 베를린은 지난해 교통안전용 조명을 제외한 공공건물과 기념물의 조명을 모두 금지했고, 복도·로비·창고의 난방과 개문(開門) 난방을 법으로 금지했다. 프랑스는 겨울철 의료시설과 보육원을 제외한 모든 건물에서 난방 온도를 19도 이하로 제한했다. 폐점 후 조명이 들어간 광고나 네온사인을 모두 끄도록 강제하고 위반하면 최대 1500유로(약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EU 국가들은 지난해 1~10월 전력 소비를 10.8% 줄였다. 이 기간 우리나라 전력 수요는 4% 증가했다.
정부가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효율을 높이고자 지난해 10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하며 절약을 유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과 12월 전력 판매는 각각 0.8%, 0.7% 감소하는데 그쳤다. 1월(2.9%)과 2월(0.7%)엔 오히려 늘었다.
◇통상 마찰 우려도…요금 정상화해야
값싼 전기 요금으로 인한 통상 마찰도 현실화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월 “한국의 값싼 전기 요금이 철강업계에 사실상 보조금 역할을 하고 있다”며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전력업계 고위 관계자는 “내부에서 쉬쉬해왔지만 값싼 전기요금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가 통상마찰 우려였는데 현실화됐다”고 했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절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 이슈가 이달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는 “한전이 적자를 내면서도 역마진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어 우리측 방어 논리가 약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기에 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전기료 정상화와 소비 효율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전 부실은 말할 것도 없고, 탄소 중립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여름이 되기 전에 요금 인상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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