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까지 뒤흔드는 값싼 전기료
대규모 적자로 자금난에 빠진 한전은 작년 한 해 31조8000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가장 많은 회사채를 찍어냈다. 전기 요금을 못 올리니 달리 운영 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폭풍이 자금 시장에 몰아쳤다. 가뜩이나 금리 급등기에 돈값이 비싸진 상황에서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져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 그런 가운데 트리플A(AAA) 등급 초우량 한전채가 최고 연 6%에 육박하는 금리로 쏟아지자 시중 자금이 한전채에 몰리는 ‘블랙홀 현상’이 나타났다. 신용 등급이 더 낮은 기업들은 돈 구하기를 아예 포기하거나, 연 10%가 넘는 금리를 물고 급전을 빌려야 했다.
올해도 자금 시장의 혼란이 재발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기료 인상이 미뤄지면서 한전은 올해도 채권을 대거 찍어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전은 1월 3조2100억원어치를 시작으로 이달 19일까지 채권을 총 9조3500억원어치 발행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많다.
시장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사겠다는 기관투자자가 부족해 발생하는 미(未)매각률이 A등급 회사채는 2월 4.4%에서 3월 26.7%(2870억원)로 급등했다. 이달 들어선 GS엔텍, 쌍용C&E 등이 계획했던 만큼 자금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반면 한전채는 4000억대를 모집하면 1조원 넘는 수요가 몰릴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올해는 한전채뿐 아니라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이나 은행채 등 초우량 채권들의 발행도 줄을 섰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처럼 한전채의 자금 수요 잠식 현상이 또 벌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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