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77] 쿨함은 그대로 부담감은 ‘제로’
익숙한 선율에 몽환적인 플럭(pluck) 사운드와 세련된 비트가 어우러져 묘한 쾌감을 불러오는 뉴진스의 ‘제로’가 화제다. 지난 3일에 발표한 뉴진스의 싱글 음원 ‘제로’는 열흘 만에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천만 뷰를 넘길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노랫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제로’는 코카콜라의 뮤직 플랫폼인 ‘코크 스튜디오’가 뉴진스와 협업해서 만든 광고 음악이다. 40초 내외의 짧은 길이로 이루어진 기존의 광고 음악과 달리, 2분 36초 길이의 ‘제로’는 일반적인 대중가요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한국 코카콜라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국에서 1886년에 처음 만든 코카콜라가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부터 정식으로 생산,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광복 이전에도 코카콜라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조선일보’ 1930년 10월 12일 자 기사에는 코카콜라 회사의 회장이 호화로운 선박을 타고 여행 중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일보’ 1938년 4월 18일 자에는 수년 동안 불치의 폐병으로 고생하던 이규희란 사람이 코카콜라를 복용하고서 병이 나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지금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코카콜라를 ‘세계 최고 폐장(肺腸) 강장제’로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오랜 역사를 지닌 코카콜라는 ‘다리 세기 놀이’의 노래에도 등장했다. 다리 세기 놀이는 두 사람 이상이 마주 보고 앉아 다리를 서로 엇갈려 끼운 채 노래를 반복하며 다리를 하나씩 빼다가 마지막에 남은 다리의 주인이 벌칙을 받는 놀이다. ‘제로’에 차용된 노래의 원래 가사는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어. 또 먹으면 배탈 나”로 시작하는데, 그다음 부분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 노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1990년대에 널리 유행했다. 전래 동요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변모된 셈이다.
“코카콜라 맛있다”로 시작하는 노래 이전에 다양한 노랫말의 ‘다리 세기 노래’가 전국적으로 분포했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청사 맹건 도맹건”처럼 여러 단어를 의미 없이 연결해 부르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저희들만 먹고요. 우리 집에 와 봐라. 물 한 모금 안 준다”라는 노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다리 세기 노래들을 기반으로 해 뉴진스의 ‘제로’가 출현하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중요한 것은 기존의 감성을 어떻게 낯설게 해 새롭게 제시하는가이다. 신복고(newtro)라는 말처럼 ‘제로’는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랫말을 신세대도 공감할 수 있게끔 창출한 것이다. 그나저나 뉴진스의 노래처럼 인생도 “쿨(cool)함은 그대로 부담감은 제로”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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