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내 이야기를 쓰는 연습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규정했다. 최근작 ‘젊은 남자’(레모)의 첫 장을 열면 ‘내가 쓰지 않으면 사건들은 그 끝을 보지 못한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소설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는 왜 쓰는가’라는 문제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 습작 기간, 나는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그 기간에는 글을 완성해도 읽어줄 독자가 없을뿐더러, 경제적 보상도 따르지 않는다. 등단이 요원하게 느껴질 때면, 이 글을 발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마저 사치처럼 여겨진다. 한마디로 소설을 쓰는 행위는 무(無)대가, 무보수의 노동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지속해서 쓰려면, 필연적으로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다.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작가의 절실함과 맞닿아 있다. 등단 후, 내가 느낀 점은 작가가 주제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독자가 본능적으로 안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소극적인 자세로 주제를 관망할수록 독자의 몰입도와 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는 것도.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한순간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 쓰기는 ‘자신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왔다. 지금 나의 분노와 결핍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파악하는 일. 그리고 이것을 반드시 이야기하고 말겠다는 사명감을 가지는 일. 나는 여전히 이 두 가지 일 앞에서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등단작이 세상에 나간 후, 글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건 생각보다 많은 대가(代價)를 치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믿으므로, 나는 여전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연습’에서 물러서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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