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대학의 절망과 새 희망

기자 2023. 4.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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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존경하는 선배 교수가 정년을 여러 해 남겨두고 대학을 떠나버렸다. 이 일은 좀 화제가 되었다. 그의 학덕과 사명감, 또 감당해야 했던 과정을 조금 아는 나도 새삼 놀랐지만, 많은 이들이 크게 의아했다. 정규직 교수는 65세 정년까지 누릴 게 많다는 인식 때문이겠다. 그러나 당자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 조금 얼버무려 말할 뿐, 자신의 가치관과 대학 현실의 엄청난 격차에 대해 어떤 멋진 말로도 포장하여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조차 절망의 깊이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위기에 처한 대학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분노와 모멸을 참으며 견딘다. 우선 ‘생존’을 위해서 그렇고, 교육자로서의 사명의식이나 연구자로서 내면화한 ‘보람’ 때문에 그렇게 한다. 물론 가장 큰 감내자들은 비정규직 교수와 직원들이다. 무엇이 그런 모멸과 분노를 가져다주는가? 굳이 또 말하자면 밖으로는 학문과 대학을 농단하는(가지고 노는) ‘닥터 Yuji’ 같은 이들과 그에 부역하는 자들이며, 안으로는 대학을 자산으로 삼아 권세와 부를 누려온 세력과 그 밑에서 돌아가는 작은 권력들이다.

지역 사립대에서 근무하는 한 지인은 ‘중소기업 사원’임을 자처한다. 지역 대학이, 이른바 ‘좋소’라 불리는, 재벌 대기업과 대극적 자리에 놓이는 바로 그런 중소기업들과 비슷해졌다는 뜻이다. 그런 기업의 지배구조, 비전, 근무환경, 노사 및 인사 체계 등은 재벌이나 새로 부상한 몇몇 정보기술(IT) 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양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100 대 60 정도이며, 문화적·정신적 거리도 이제 엄청나게 커졌다. 그처럼 이제 대학 내부의 불평등은 물론 대학 간 불평등도 심각하다.

그래서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완전히 다른 맥락에 있다. 그중 지극히 ‘한국적인’ 답 하나를 사학법인연합회가 보여준다. 연합회는 정부가 사학의 자진폐교를 지원하는 ‘해산장려금’을 설립자와 상속권자, 학교법인 등에게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책임감은 심각하게 결여됐지만 재산권에는 예민한 사학재단이 ‘바로 이때다’ 하며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 연합회 관계자는 사학들이 위기에 처한 것은 그들이 대학 경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저출생 정책 등 정부 때문이라고 생각한단다(유스라인 등의 보도). 사학재단의 이런 인식과 행태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교육부는 와중에 ‘글로컬대학 30’이라는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5년간 1000억원씩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지역 대학에 나눠준다는 것인데, 오히려 지방과 대학을 더욱 극심한 경쟁과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 될 거라는 우려가 많다.

이런 압력 때문에 대학에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말뜻 그대로의 생존주의뿐 아니라 조장된 불안과 비겁, 패배주의와 자폐의 심리 상태와 돈 중심의 사고방식이 너무 깊게 고질화되어 있다. 여기에 감염되는 일은 무척 쉽다.

그런데 현 정부 아래에서 교수·연구자들은 다시 서서히 깨고 있다. 민교협·전국교수노조 등 7개 단체가 ‘전국교수연대회의’로 공공적 대학 정책을 위해 연대해서 나서고 있으며, ‘굴욕외교’에 대한 비판 시국선언이 전국 대학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기성의’ 고투 외에 한국 ‘대학’에는 새로운 주체가 엄연히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한다.

지난겨울부터 학계에 작지 않은 논제를 던진 <한국에서 박사 하기>나 <천하제일연구자대회> 등을 보면, 젊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가진 대학에 대한 의식을 알 수 있다. 미래를 이끌어갈 그들의 대학관은 여전히 순수하고 규범적인 것이다. 대학은 학문적·지적 공동체이고, 진리(학적 엄밀성·객관성)와 휴머니티에 의해 기율되며, 사람을 정말 ‘크게’ 키워야 하는 곳이다. 처참한 현실에서도 이런 인식과 소망이 전수되어 대학에 분명히 살아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지난달 성균관대·고려대·경희대 등 몇몇 대학이 교육부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 지원 업무를 맡지 않으려 한 일이 있었다. 이런 대학의 임무 방기는 물론 ‘비용’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런데 성균관대의 대학원생 당사자들은 참지 않고 집단적으로 한국연구재단과 대학본부에 항의하고, 총장실에 직접 연락을 하고 본부와의 대화 자리에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그래서 문제를 시정했다. 대학의 이상과 기본을 믿고 지키려는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수행된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와 연구자 단체들은 대학과 학문장 안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주체와 기운을 최대한 북돋우며, 다시 대학의 미래에 관한 태도와 언어를 벼려야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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