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짝사랑’ 평설

권상인 ㈔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예술학박사 2023. 4.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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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삶의 애환 위로한 명곡
서양가곡 위주 수업보다 ‘두만강’ 등 가르쳤으면
권상인 ㈔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예술학박사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작곡되기 전, 먼저 노랫말인 가사가 시 구절처럼 마음을 적셔주는 내용이어야 한다. 암울했던 1930년대, 우리 대중가요가 전통적 민요조의 노랫가락 형식에서 탈피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 서구적 자유시(詩)를 스승인 김억 시인에게 수업받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월의 시 구절들은 감각적이며 애상적, 혹은 사랑함의 감정이 순수한 우리말로 예쁘게 표현돼 있다. 이후 우리의 시가 전통적 시조 형식에서 탈피해 자유시 형식으로 바뀌면서 대중가요 작사자들이 소월의 시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중가요 작사자들의 노랫말이 지어지고 있을 때, 문득 진주 출신 작곡가 손목인(1913~99)의 등장은 우리 대중가요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30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 방법을 배우면서 관현악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특히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미국 대중가요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와 함께 몸동작을 곁들이게 되는 배경음악, 즉 밴드 구성의 중요함을 인식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으로 구성된 스윙밴드의 구성 요소에 관해서도 연구했다.

손목인은 도쿄음악학교 재학 시절 경북 김천 출신 김능인이 작사한 ‘타향살이’란 가사에 곡을 붙여 히트했고, 그 이듬해 문일석이 작사한 ‘목포의 눈물’을 작곡해 이난영을 일류 가수로 출세시켰다. 이때 손목인의 나이 21세로 대학재학 중인 학부생 나이였으니 그야말로 천재적 작곡가였다. 또 그가 작곡한 고복수의 ‘짝사랑’은 1935년을 전후로 불리던 유행가 중 여가수 이난영의 엘레지 ‘목포의 눈물’과 쌍벽을 이루는 당시 남성 가수 노래였다.

짝사랑의 작사자 본명은 승응순이다. 예명이 김능인(金陵人)으로 김천 사람임을 자칭했으나 황해도 금천(金川), 혹은 강원도 홍천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필자는 그가 자칭한 예명을 따라 경북 김천 사람으로 판단한다. 1930년대 매혹의 저음가수 고복수가 불러 지금은 우리의 가곡으로 되어버린 ‘타향살이’와 ‘짝사랑’은 1910년 태어나 1937년 27세로 요절한 김능인의 가사이다.

지나간 세월 짝사랑하던 여인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수년을 홀로 살아 온 한 적막한 남자의 심상을 표현한 ‘시’ 이다. 노래 첫머리에 ‘아-아 으악 새 슬피우니……’ 라는 구절에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고 한 감탄사가 짝사랑 가사에는 첫 소절에 배치되고 이어 ‘으악 새’가 뒤를 잇는다. 으악 새라는 고유명사는 조류인 새가 아니고 식물인 억새풀이다. 이 풀은 주로 산기슭과 산 위의 벌판, 이를테면 영남알프스 천왕봉 밑 사자평에 10월경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 짝사랑의 ‘으악 새’를 좀 주의 깊은 애청자들은 ‘어떻게 생긴 새일까?’라고 궁금해 한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애창곡이었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으악 새의 형상이 매우 궁금했었다.

작사자가 본래는 억-새라고 기록한 것인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고복수는 경상도 사나이였기 때문에 억새라는 발음이 되지 않아 으악 새로 발음한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발음이 잘되지 않아 ‘있어요’를 ‘있으요’로 발음하는 이치와 같다. 고복수가 ‘억새’라는 발음을 ‘으악 새’로 불렀기 때문에 이 풀의 이름이 새의 이름으로 졸지에 바뀌어 버린 것이다. 평안도 지역에서는 철새인 왜가리를 ‘으악 새’라 한다는 사전적 표기가 있기는 하지만 왜가리는 억새가 필 무렵인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남쪽 나라로 이동한다. 때문에 평안도에서는 초가을에 이미 자취를 감춘다. 본래 왜가리는 5~6월 여름철 번식기가 지나면 절대 울지 않는 조용한 새이다.

짝사랑 2절 첫 구절의 ‘뜸북새’도 한여름 새끼를 길러 가을에는 왜가리보다 먼저 남쪽 나라로 떠나므로 왜가리와 뜸북새가 가을에 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머나먼 고향과 옛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매혹의 저음가수 고복수의 음색은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으로 첫 소절부터 애절한 감정이 터져 나오므로 2절의 가사가 끝나도록 감상자의 가슴을 슬픔으로 꽉 채우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란 모든 소리를 조화롭게 결합해 사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이 고복수의 ‘짝사랑’은 이미 우리 민족의 명곡으로 선곡돼 100년 가까이 우리가 꾸준히 불러온 노래이다.

이제는 우리 국정교과서에서 서양의 가곡들을 좀 빼고 이미 우리의 명곡이 된 ‘짝사랑’ ‘목포의 눈물’ ‘두만강’ 같은 우리 대중가요를 학교음악 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아직은 이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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