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글로컬대학, 정말 지역대·지역 살리는 길인가
지금 지역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교육부가 공시한 소위 글로컬 대학 프로그램 때문이다. 모든 지역대학이 5쪽짜리 대학혁신 기획서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원래 교육부는 3월에 글로컬 대학 프로그램을 발표했다가, 대학 현장의 반발로 진행 일정을 수정해서 4월 18일 자로 발표를 다시 했다. 글로컬 대학 프로그램의 핵심은 2026년까지 30개의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지역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그 첫 출발로 올해의 계획은 5월까지 5쪽짜리 기획서를 제출받아, 6월에 글로컬 대학위원회를 통해 예비지정을 하고, 이후 3개월간 지자체 지역산업체와 함께 실행계획을 수립하게 하며, 9월에 10개 내외의 대학을 최종 선정하는 것으로 사업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이 안을 보면서 우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역대학을 살리겠다는 계획을 이렇게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이유다. 지금 지역대학들이 처한 위기상황은 속전속결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속전속결할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처방은 대증요법도 필요하지만, 지역대학의 문제는 그렇게 대처할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대학이 처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대학과 제대로 된 협의 절차를 거친 것도 아니고,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이라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교육부가 대학을 상대로 해온 일방적인 집행자의 횡포로밖에 볼 수 없다. 횡포라고 보는 이유는 지역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그리고 지역을 살리는 미래의 대학으로 혁신하는 일을 기획하는 이 엄청난 일이 이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 현장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부여해 혁신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숙고할 수 있도록 글로컬대학 예비지정 시기를 6월 중으로, 본지정 시기를 9월 말로 조정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엄중한 지역대학 혁신안을 5쪽짜리 기획서로 대신하라고 하는 발상 자체가 무리다. 준비 기간이 짧기에 기획서 내용을 5쪽짜리로 줄였다면 글로컬 대학 발상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지역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지역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면 대학과 지자체, 그리고 지역산업체가 공동으로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세워나가야 한다. 이 혁신안을 온전히 마련하려고 하면 계획 초기부터 지자체와 지역산업체와의 긴밀하고 체계적인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예비선정 이후에 지자체와 지역산업체와 실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설계한 것은 온당하지 않다. 대학끼리의 경쟁을 통해 몇 개의 대학을 한 지역에서 우선 선정하겠다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컬 대학을 향한 격렬한 경쟁에서 떨어지거나 아예 배제된 지역의 국·사립대학들은 도태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는 지역에 30개 정도의 대학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연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게 과연 지역대학을 살리는 길일까?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지역에 30개 정도의 대학만 살아남게 된다면, 이 지역대학의 생존으로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므로 이번에 공시된 글로컬 대학 프로그램은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하고, 일정도 다시 짜야 한다. 각 지역대학이 각개전투를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 있는 국·사립대학들이 함께 협력체계를 새롭게 구성해서 상당 기간 집단지성의 힘으로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미래 지역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설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현재 계획된 일정처럼 속전속결로는 불가능하며 제대로 된 지역대학의 새로운 모델이 나오기 힘들다. 지역에 소재한 국·사립대학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역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고, 그 모델이 현실화될 수 있게 정부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면 된다.
지역대학들이 글로컬 대학에 목을 매고 각개전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안타까움이 가슴을 친다. 진정 부산지역의 미래를 위해 현재 각자도생하고 있는 대학들을 연합전선으로 전환시킬 주체나 매개는 찾을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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