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집 나비는 ‘3초 진돗개’입니다. 얼핏 보면 잘생긴 백구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10여종 혈통의 외모가 드러나는 세계 평화의 상징입니다. 수많은 그의 조상들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은 넓은 영토에 제국을 건설하고 살던 늑대이기에, 나비 또한 다른 개들처럼 영역에 대한 강한 애착을 물려받았습니다. 비록 순둥이라 노력이 가상할 뿐이지만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고,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습니다.
동물들에게 영역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언뜻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 책상 중간에 그은 선, 넘어오지 말라던 그 엄포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영역은 우리가 생각하듯, 무턱대고 공격적인 선이 아닙니다. 애초에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냥터이자 번식과 생존에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존중해야 마땅한 영역입니다. 우리도 최소의 영역은 필요합니다. 주변의 조언이 참견을 넘어 상처가 될 때, 장난이 과격함을 넘어 위협이 될 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선을 넘었네”라고 하더군요. 최소의 영역이 그 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들 선의의 합의이고, 서로의 약속입니다. 숨쉴 틈입니다. 존중해야 마땅한 영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존중할 수 없는, 보기 흉한 영역도 만듭니다. 만들었다 하면 넓히기에 급급합니다. 외부를 배척하기 위해 장벽을 세우고, 생존에 필요한 것인 양 치장했지만 특권을 고수하려는 일이 잦아,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밥그릇 싸움이라 치부되곤 합니다.
최근 제가 좋아하는 개그맨 한 분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평론가는 한 줄 평이랍시고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라고 적었습니다. “여기”란 소위 영화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 대한 평론이 아니라,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보입니다. 개그맨이 넘은 것은 그 평론가가 만든 장벽이라면, 그 평론가가 넘은 것은 우리가 존중해야 할 선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로 택배 차량 등 외부 차량의 출입을 통제해 문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옆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아파트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안전한 주거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인 양 굴지만, 그 주민들이 높이고자 했던 장벽은 되레 우리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한반도에서 호랑이 같은 대형 육식동물은 살 수 없습니다. 땅덩어리가 도로와 철도로 잘리고, 농경지나 도시로 개발된 결과 큰 동물이 영역으로 삼을 만한 공간이 남지 않은 탓입니다. 애초에 그들의 생태가 너무 넓은 영역을 필요로 한 탓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역을 넓혀가며 그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한 집단이 욕심을 부려 필요 이상으로 영역을 부풀리고, 특권을 누리고자 장벽을 높이면, 바깥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영역이란 걸 지키려고 치열하게 싸우며 하루를 살았습니다. 무엇을 왜 지키고 있나요? 진짜 이유는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무턱대고 치열한 것은 아닌가요? 내가 지금 지키려 하는 것은 존중받아 마땅한 영역일까요? 너무 부풀려 남의 소중한 선을 넘고 있지는 않나요?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 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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