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서정시대] 아웃사이더, 아웃라이어… 지금은 경계인 시대

김지수 인터뷰 작가 2023. 4.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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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 듣는 일인지라, 귀가 저절로 움직이는 언어가 있다. 마음이 갑갑할 땐 산뜻한 어른의 힘을 뺀 언어가 숨통을 터준다. 예컨대 ‘돈 필요할 때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윤여정의 현실적인 농담, ‘야망이 앞서면 일을 그르치니, 에너지의 90%만 쓰라’던 디자이너 노라노의 다정한 호통,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라고 속삭이는 밀라논나 장명숙의 위로나 ‘생에 감사해’하는 김혜자의 무공해 눈빛 같은 것들.

재능과 일에 대해 고민할 때는 자기만의 ‘끈기와 끊기’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터의 자존가들에게 고무된다.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서 나를 관찰했고, 못하는 것을 하나둘 포기했더니 지금의 선명한 내가 남았다”고 가수 장기하는 말했다. 단념은 전념을 위한 알리바이. ‘못하는 것’을 빼고 ‘잘하는 것’의 정확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생긴 고유함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비교 게임에서 그를 구원했다. 마침내 ‘포기에 성공한’ 장기하의 입에서는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랫말이 샘물처럼 흘러나왔다.

여성 현자와 일터의 자존가들을 지나 요즘 나의 귀가 촉을 세우는 언어는 다름 아닌 경계인의 언어다.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은 외부자로 살아온 사람들. 수용받지 못했거나 스스로를 추방한 채 바깥에서 서성였던 아웃사이더들에겐 사회적 인증의 노이로제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광채가 일렁거렸다.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을 만났을 때, 나는 그의 분방한 어조와 시니컬한 사유에 매료되었다. 우리 모두 ‘똑똑한 채로 똑같아지는’ 정보 가축이 되어, 디지털 울타리 안에서 데이터 고기만 생산하고 있다는 그의 일침은 군더더기를 정형한 칼의 언어로 살기등등했다. 정보 사료를 먹고 비만해진 인간은 ‘똑똑해질수록 똑같아지는’ 운명이기에, 한병철은 스스로 외롭고 추방당한 타자(他者)가 되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한국에는 타자가 너무 부족해요. 타자로 남는다는 것은 지치지 않고 각성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계속 서로의 타자로 남아야 해요.”

그렇게 내가 본 빛나는 경계인들은 ‘타자’를 초대하는 태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스스로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기에, 그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았다. ‘추방당한 경험’은 그들의 지경을 더욱 넓고 기름지게 만들었다. 전 세계에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알린 작가 이민진을 인터뷰했을 때 느낀 것도 그 언어의 ‘담대함’이었다. ‘재능을 생각하기보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는 고백에서 사회 속의 개인을 품어 보는 광활한 시야가 느껴졌다. ‘역사가 우릴 망쳐놨지만, 상관없다’는 소설 ‘파친코’의 놀라운 첫 문장에는 그렇게 아웃사이더가 아웃라이어가 되는 신비가 숨어 있다.

변방에 있다는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경계인은 더 많은 타자를 균열 없이 수용하는 언어를 발견한다. 시각 장애로 태어난 아들을 위해 운동 약자들도 할 수 있는 유루 스포츠를 개발한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도 그랬다.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타자 없는’ 일본 사회에서 ‘일이란 민폐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생을 포개어 가는 것’이라는 도모히로의 언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석 같은 민폐를 끼쳐줘서 고마워.” 아들에게 고백한 아버지의 감사 인사는 그 단어의 순한 조합만으로 위로가 된다.

의족을 한 여성이 모델로 선 '절단 비너스쇼'. 마이노러티들의 약점을 신세계로 발견해낸 경계인 사와다 도모히로가 기획한 행사다. /사와다 도모히로 제공

어쩌면 타자를 편견 없이 보려는 노력, 그 자체가 아웃라이어의 출발선이다. 이민진은 자이니치의 고된 생애사를 알기 위해 수백 명의 당사자를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들었고, 그 과정에서 ‘파친코’를 완전히 다시 써야 했다(결국 28년의 시간이 걸렸다). 도모히로도 200명의 장애인 가족을 만난 후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을 봤다. 들어 보면 안다. 타자는 우리의 단정보다 생생하고 상냥하고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의 대부분은 낯선 사람과 과감하게 말을 터보면서 시작된다”고 답한 사람은 ‘아웃라이어’를 쓴 맬컴 글래드웰이다.

종의 다양성 없는 생태계는 위험하다. 경계인, 소수자, 타자들이 없으면 ‘똑똑해질수록 똑같아지는 획일성의 지옥’에 갇히게 될 터. 기꺼이 타자를 초대하는 사회,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자리에 서서 모두가 아웃라이어가 되는 사회,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더 많은 장기하가 사는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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