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소의민족
배냇저고리. 갓난아기에게 입혔다. 이승을 하직할 땐 수의가 포개졌다. 한여름에는 삼베로 만든 옷들이 출렁거렸다. 엄동설한에는 덕지덕지 무명으로 누볐다. 무채색 풍광의 파노라마였다.
적어도 그랬다. 어렸을 적 기억을 복기하면 그때의 옷들은 흰색에 가까웠다. 색채학적 시각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른들은 ‘백의(白衣)’라고 우겼다. 코흘리개들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선생님들도 “우리는 흰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고 가르쳤다. 중국의 역사서에도 수천년 전부터 우리를 그렇게 불러왔다. 그래서 그게 맞는 표현인 것으로 알고 지내 왔다. 백의민족(白衣民族). 흰색 옷을 즐겨 입었다는 뜻에서 일컬어지던 표현이었다. 당시는 뭐 크게 따질 겨를이 없었다.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게 최대 과제였고, 먹는 것 외에는 모두 사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흰색이라는 지칭에 대해 고찰해보자. 과연 맞을까. 엄밀하게 따지면 백의는 흰색이 아니다. 우리가 예부터 즐겨 입었던 옷감인 모시, 삼베, 무명, 명주 등의 염색하기 전의 색깔은 자연 그대로의 색, 즉 소색(素色)이었다.
당시 이들 옷감으로 만들어졌던 저고리, 두루마기, 갓 등이 그랬다. 소색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칡, 대마, 견, 면 등 다양한 직물과 그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 목화솜, 삼 껍질 등이 입증해준다. 꾸미지 않은 색깔, 그 자체는 소색이다. 천연에서 얻는 섬유 가운데 가장 긴 섬유인 견직물, 내구성이 좋고 세탁이 편리한 면직물 등을 볼 수 있다. 조선백자의 소박하고 기품 있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이제 명쾌해진다. 우리 민족은 엄밀한 의미에서 ‘백의민족’이 아니라 ‘소의민족’이다. 그렇게 불러야 한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는 표현은 수정돼야 마땅하다. 잘못된 건 고쳐야 한다. 그게 정의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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