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리버티뉴스’에 담긴 영화사적 의의와 중요성

경기일보 2023.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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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충범 한국영상대 영화영상과 교수

과거에 ‘뉴스영화(newsreel)’라는 것이 있었다. 여러 개의 단편 뉴스 영상물들로 이뤄진 러닝타임 10분 내외의 독립된 콘텐츠를 지칭하는데 영문명에 반영돼 있듯 그 자체가 필름 시대의 산물이었다고 할 만하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일반명사보다도 ‘대한뉴스’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40대 중후반 이상의 연령대라면 극장에서 한번쯤은 ‘대한뉴스’를 접해봤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1963년부터 1995년까지 영화법에 명기되어 있던 뉴스영화와 문화영화의 의무상영 제도가 자리한다.

‘대한뉴스’의 역사는 꽤 길며 분량 역시 상당하다. 1953년부터 1994년까지 40년 넘게 거의 매주 완성돼 총 2040호가 쌓이게 된 것이다. 제작은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6월22일 설립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맡았으며, 이전까지는 그 전신인 공보국 영화과 산하의 대한영화사에서 담당해 왔다.

그렇다고 한국 뉴스영화의 역사가 대한뉴스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비록 식민지 시기였으나 1941년에 ‘조선뉴스’가, 1942년부터 ‘조선시보’가 제작된 바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보’는 해방 이후에도 뉴스영화명으로 사용돼 ‘대한전진보’를 거쳐 ‘대한뉴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1952년 5월19일부터 1967년 6월1일까지 모두 721호가 발행된 ‘리버티뉴스(Liberty News)’의 존재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 15년 사이에는 ‘리버티뉴스’가 ‘대한뉴스’에 버금가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다만 그 제작 기구가 주한 미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USIS)이었으므로, 이를 온전한 한국 뉴스영화로 보기에는 한계 지점이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편집, 녹음, 음악, 현상 등 다수의 기술 인력이 한국인이었고 내용의 절반 이상이 국내 소식으로 편성됐으며 내레이션이 한국어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리버티뉴스는 커다란 영화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를 통해 전후(戰後)의 척박한 여건 하에서도 영화인이 양성되고 영화 제작 여건이 마련되며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이 충족돼 갔다는 사실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반가운 일이 하나 생겼다. KTV국민방송에서 ‘한미동맹 70주년 새로 보는 리버티뉴스’를 20부작으로 기획해 4월3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6시50분부터 10분간 방영하게 된 것이다.

‘리버티뉴스의 탄생과 임시수도 부산’이라는 제목의 첫 방송을 통해서는 리버티뉴스의 제작 배경 및 대중 영사 광경, 그리고 피란 시절 부산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와 문화 이벤트의 모습이 다채롭게 소개됐다. 이를 위해 부산시 첫 시의회 개최 소식 등을 전하는 리버티뉴스 1호 화면 및 리버티뉴스를 다룬 문화영화나 대한뉴스 등의 영상 자료에 더해 리버티뉴스의 황의순 전 프로듀서와 ‘천일의 수도, 부산’의 저자 김동현 칼럼리스트의 인터뷰 장면이 삽입됐고, 여기에 적절한 자막 설명도 첨가됐다. 이로 인해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완성도 높은 짧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4월10일 방영된 2회차에서는 경무대, 창경원, 남산 등지를 중심으로 1950년대 후반 서울의 풍경이 전시됐다. 이번 주에 공개된 3회차의 경우, 1953년 10월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전후의 과정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이후에도 KTV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충무공 이순신, 수출품의 변천, 가정의 달 행사, 대학가 축제 등 다양한 주제로 리버티뉴스에 기록된 1950, 60년대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문화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리버티뉴스의 필름은 오랫동안 유실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역사영상융합연구팀에 의해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이 소장하고 있던 624편 전량에 대한 수집이 이뤄졌다. 하지만 미보존 영상물이 여전히 적지 않을 뿐더러 확보된 자료의 대부분이 사운드와 자막 처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여서, 해당 정보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파악하는 데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21일 KTV가 ㈜맥스교육의 박영배 대표로부터 신규 발굴 영상물 58편과 오디오 복원본 220편이 포함된 리버티뉴스 9~350호(1953.6~1960.10) 자료를 기증받았다. 곧이어 리버티뉴스 관련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이다.

KTV는 과거 ‘대한뉴스’를 생산·보급하던 국립영화제작소의 후신이다. 이에, 여기서는 22호부터 2040호까지 총 1만2천804건에 달하는 구성 영상물을 관리하며 온라인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뉴스 필름은 1953년 6월 이전, 즉 1호부터 21호까지의 분량이 현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뉴스영화가 새롭게 출발한 6·25전쟁기와 그 이후의 시대 상황과 생활상, 사회 분위기와 삶의 양상들을 살펴보려는 과정에서 뉴스영화에 부여된 사료적 가치와 더불어 리버티뉴스의 영화사적 중요성은 재차 부각될 공산이 크다.

KTV의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보다 많은 이들이 리버티뉴스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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