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뇌출혈 소견” 여학생, 현장정보 공유 안돼 엉뚱한 병원에 이송

조건희 기자 2023.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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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학생 표류’ 대응 부실

지난달 19일 대구에서 추락사고 후 159분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숨진 A 양(17) 사건의 이면에는 총체적으로 부실한 응급체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는 A 양 사건에 대해 이달 초 합동 현지조사를 마치고 18일 대책 회의를 열었다. 조사 결과 A 양이 숨지기 약 1시간 전 이송된 중소병원 의료진은 119구급대에 “뇌출혈이 의심되니 대형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냈다. 이 정보는 대구소방안전본부 119 상황실이나 다른 병원에 공유되지 않았고, A 양은 다시 대형병원이 아니라 다른 중소병원으로 이송됐다. 그 과정에서 심정지가 왔다.

사건이 벌어진 날 10곳이 넘는 병원이 A 양의 수용을 거부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다수 병원은 ‘전문의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119구급대가 A 양을 싣고 갔던 병원 중 한 곳은 다른 환자들이 몰린 탓에 의료진이 A 양을 직접 진찰하지도 않았다.

또 다른 병원은 A 양이 자살을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가능한 곳으로 가라고 구급차를 돌려보냈다. 보건당국은 경찰 수사 결과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A 양 사건과 관련한 최종 처분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중증응급 환자를 치료할 의료진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19구급대와 상황실, 병원이 환자의 상태와 응급실 병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뇌출혈” 판단 84분 걸리고, 병원 10곳서 진료거부 ‘159분 표류’

‘대구 사망 여학생’ 대응 부실
3차 이송병원 “대형병원 가야” 안내
중환자 정보 공유 안돼 중소병원行
결국 심정지된 채 5차 이송뒤 숨져

대구에서 지난달 19일 응급실을 떠돌다 숨진 A 양(17) 사건은 우리 응급의료 체계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응급환자의 상태와 병상 정보를 병원과 119가 정확하게 공유할 시스템이 부실했고, 중증 응급환자를 치료할 의료진은 부족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시리즈에서 지적한 문제들이다.

● “의사 없다” 거절에 여러 병원 전전

A 양은 사건 당일 오후 2시 15분경 대구 북구 대현동의 4층 건물에서 떨어졌다.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A 양은 의식이 있었고 뒤통수와 발목이 부어 있었다. 지침상 ‘중증외상’으로 분류하고 권역외상센터로 이송해야 할 환자였다. 하지만 당시 구급대원이 기록한 구급활동 일지에는 ‘인근 건물 3m 높이 창문이 열려 있다’고 적혀 있었다. A 양이 3m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현장 상황을 오판하고, 경증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오후 2시 34분, 구급대는 약 2km 떨어진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실로 A 양을 이송했다. A 양의 상태를 본 의료진은 “높은 곳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우리 병원은) 담당 의사가 없다”며 구급대를 돌려보냈다.

오후 2시 51분, 두 번째로 도착한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선 A 양이 아예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A 양이 구급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구급대원만 응급실 전공의를 만나 A 양의 상태를 설명했다. 응급실 대기 환자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이 전공의는 ‘우리 병원 권역외상센터에 연락해 보라’고 권했고, 외상센터에선 ‘병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추락 환자인 만큼 두 병원 모두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라도 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소방안전본부 구급상황관리센터(구상센터)도 A 양을 받아줄 병원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다른 대학병원 3곳도 ‘전문의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

● 119-병원 ‘뇌출혈 의심’ 정보 공유 안 해

사고 1시간 24분이 지난 오후 3시 39분, 구급대가 세 번째로 도착한 곳은 중소병원인 바로본병원이었다. A 양은 이때 의식 저하와 안구 쏠림 증상을 보였다. 뇌출혈 의심 증상이다. 의사는 “뇌출혈이 의심되는데 이 병원에선 치료할 수 없으니 서둘러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구급대에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구급대는 경북대병원 등 인근 대형병원들에 전화를 돌리면서도 A 양이 뇌출혈 의심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뒤통수와 발목이 부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병원들은 A 양을 받아주지 않았다. 만약 이때 ‘뇌출혈 의심 증상을 보일 정도로 중증 환자’라는 정보를 119와 병원이 공유했다면 A 양은 병원에서 정밀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받고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대구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우리 구급대원들은 그런 (뇌출혈 의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고 해명했다.

오후 4시 27분, 또 다른 중소병원인 삼일병원에 도착한 A 양은 3분 만에 심정지에 빠졌다. 구급대가 심폐소생을 실시하며 재이송한 끝에 오후 4시 54분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도착했지만 A 양은 끝내 숨을 거뒀다. 10곳 이상의 병원이 이날 A양 수용을 거부했다. A 양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장 구급대원 대신 구상센터가 환자 상태를 각 병원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빈 병상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21년 대구 내 응급환자 8만8943명 가운데 구상센터가 병원을 찾아준 건 6881명(7.7%)에 불과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할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A 양을 거부한 병원 대다수가 ‘담당 의사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고, 경북대병원 응급실도 환자가 너무 많아 A 양을 제대로 진료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이런 현실을 방치한다면 다른 희생자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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