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도를 아십니까
길을 걷다가 얼굴이 맑아 보인다느니 복이 있어 보인다느니 하며 다가서는 사람을 만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표정으로 멈춰 서면, 자신들이 마음공부를 한다느니 도를 닦는다느니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코로나19 기간을 포함한 수년 동안에는 없었지만, 나 역시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 차마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잠시 그들 이야기를 듣다가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떠났었다.
‘마음공부’나 ‘도를 닦는다’는 말이 오늘날 희화화된 감이 있지만, 사실 이 말은 매우 진지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녔다. ‘마음공부’는 심학(心學)이고, ‘도를 닦는다’는 말은 도학(道學)을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통 시대를 연구하는 인문학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전문 사전 중 하나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도학을 주자학의 별칭이라 말하며 긴 설명을 제시한다. 심학에 대한 설명도 긴데, 결론만 말하면 주자학 이후의 양명학, 혹은 그와 가까운 성격을 지닌 학문을 말한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한·중·일의 1000년 가까운 전통 시대에 학문, 사상, 정치에 바탕이 되었던 가치체계였다.
1945년 해방 당시 남북한을 합한 인구는 25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중에서 기독교 인구는 2%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여기에 사회적·정치적 환경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대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북 분단이 완전히 고착되었고,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도시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이웃과 친구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때 도시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을이 했던 역할을 대신했다. 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 조건이다.
1392년 건국된 조선은 세종 대(1418~1450)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 결과 부와 권력이 집중된 기득권층이 성립되었다. 그러자 이들은 조선이 천명했던 정치적·사회적 가치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건국 후 60년쯤 지났을 때 시작된 일이다. 이에 그들 자신도 지배층에 속했던 젊은 지식인과 관료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훈구와 사림의 대결이다. 이들이 주장한 것이 무슨 새로운 이념은 아니었다. 건국 이념인 성리학의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훈구는 사화를 일으켰다. 사화는 무려 60여년에 걸쳐 이어졌다. 이때 사림이 주장했던 실천적 성리학이 바로 도학이다. 그 실천에 큰 희생이 따랐다. 무수한 희생자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조광조이다. 사림은 집단적 정치투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도 스스로 성리학적 원칙을 지키는 삶을 지향했다. 깨어 있는 선비의 삶을 지향했는데, 이들이 만들어내고 지켰던 가치체계이자 학문이 바로 심학이다. 퇴계 이황이 기틀을 잡았다.
오늘날 종교의 이름을 표방한 세력이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이고 그것을 위한 일상적 실천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 성찰과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부족했기에 생겨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좋은 삶은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거나 탈공동체적 믿음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런 논의와 합의가 없다고 해서, 그에 대한 우리 각자의 생각과 행동도 공백인 채로 남지는 않는다. 가치에 대한 바른 성찰이 없는 곳에는 저급한 가치가 자리 잡을 뿐이다. 이미 우리는 더 많은 돈과 권력이 나의 삶을 가치있게 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깊이 확신한다.
500년 전 조선이 맞았던 것과 비슷한 사회적 맥락에서, 우리는 무슨 가치를 만들어내고 무슨 선택을 하게 될까.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 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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