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곡관리법 개정안 폐기, 대안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재의에 부쳐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결국 폐기되었다. 이번에 폐기된 개정안은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하거나 생산량이 수요를 3% 이상 초과하면 정부 수매를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가격 지지를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재량적 판단에서 강제 사항으로 바꾸는 것이다. 여야의 상반된 입장 차이로 개정안은 폐기되었지만 쌀 시장 상황이 엄중하다는 문제의식만큼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제 대안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먼저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쌀 산업의 정책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큰 틀에서 보면 세 가지다. 식량안보, 농가소득 안정화, 수급 균형 회복이다. 이들 세 정책목표가 모두 달성될 때에 비로소 고질적인 쌀 문제가 온전히 해결될 수 있다. 식량안보와 농가소득 안정화는 움직일 수 없는 한국 농정의 핵심 가치이지만 시장의 수급 균형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급 균형이 깨지면 나머지 두 목표도 함께 흔들리게 돼 있다. 쌀 변동직불제를 포함하여 그동안 시행해 왔던 많은 정책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던 것도 결국은 시장의 수급 불균형 때문이다.
이제는 단편적 미봉책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근본적인 정책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속되는 쌀 수요 감소 추세에서 이들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격 지지가 아닌 지불(payment) 방식의 소득 지원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향으로 농정기조를 개혁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2005년 도입한 쌀 직불제도 이런 지불 방식의 정책이지만 구조적인 공급과잉 문제로 2020년 폐지되었다. 사실 쌀 변동직불제의 공급과잉 문제는 도입 당시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다. 강한 가격 지지 효과가 나타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목표가격에 연계된 직불금 지급으로 농가소득 보장에는 손색이 없는 제도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로 도입한 현행 공익직불제는 가격 지지 효과가 없어져 시장 지향성은 강화되었지만, 이로 인해 가격 하락 상황에서 농가소득 지원 효과가 취약해지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새로운 정책 대안은 쌀 변동직불제의 공급과잉 문제와 공익직불제가 안고 있는 소득 지원의 취약점을 동시에 보완할 수 있는 직접지불제를 설계하는 것이다. 쌀 변동직불제의 기본 구조는 그대로 따르되, 지불액 산정 기준을 사전에 정해진 고정된 기준면적으로 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농가소득은 확실히 보장하면서도 생산 증대와 공급과잉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쌀 생산기반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수급 균형과 시장 기능이 살아날 수 있다. 적용되는 기준면적은 수급이나 식량안보 상황에 따라 조정하면 된다. 미국은 2002년 농업법(Farm Bill)에서 이런 유형의 지불제도(Counter-Cyclical Payments·CCP)를 도입하여 15개 주요 품목들을 대상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우리 쌀 변동직불제는 미국의 이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불을 해당 연도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도록 잘못 설계되었기에 과잉생산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정책적 오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 쌀 시장에서 혼란과 시행착오는 없었을 것이다.
쌀 산업에 이런 유형의 새로운 직불제가 공익직불제와 별도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산이 허용하는 한 밀, 보리, 콩 같은 다른 중요 작물들에도 확대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직접지불 예산을 5조원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직불제 중심 농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더 늘려야 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상황이어서 정부 입장에서는 조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쌀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한국 농업의 발전된 미래를 생각한다면 좀 더 긴 안목에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이용기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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