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찾아온 고지서 [특파원 칼럼]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 4.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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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화량 추이 M2 기준 /사진=Y Chart

미국 맥도날드에서 4인 가족이 햄버거 세트를 배달시키면 10만원 이상이 영수증에 찍힌다. 인당 20불 정도의 음식값에 팁과 배달비가 더해진다. 업력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팁은 보통 18%, 20%, 25%까지 나열되는데 30%도 종종 보인다. 얼굴 붉히며 최소값을 택해도 일인분 이상 금액을 더내는 셈이다. 이런 식당에선 한끼에 20만원이 우습다.

물가가 살인적인 건 돈을 많이 풀어서다. 통화량은 M2(현금 요구불예금 등) 기준 2018년 5월 14조 달러에서 2022년 5월 21조7000억 달러까지 늘었다. 4년 만에 7조7000억 달러 증가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자 반세기 만에 금리를 5% 가까이 올렸는데 그래도 M2는 고작 5000억 달러밖에 줄지 않았다.

미국이 늘린 통화는 한국돈으로 1경원이다. 우리 1년 예산이 640조원 정도이니 한국이 15년 먹고살 금액을 코로나19 전쟁비로 푼 셈이다. 코로나19 감염자는 1억600만명이 넘고, 사망자 수는 116만명에 달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총 41만명 사망자를 냈으니 코로나19는 그 세 배 수준의 사실상 '전쟁'이었다.

그래서 지금 물가는 전쟁후유증이다. 2년 넘게 문 닫았던 식당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물가가 끈적거리며 잘 내려오지 않는 이유다. 코로나19 기간 각종 보조금을 살포했는데 그러다보니 백수들도 일할 의욕이 없다. 게다가 짐짓 모른체 방관하던 불법체류자들을 고국으로 보낸 터라 저임금에 일할 이들이 드물다. 팁을 20% 준다고 어르고 달래야 서버를 구할 수 있다.

미국은 코로나19가 중국 때문이라 여긴다. 중국이 도의상 유감 표명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도리어 근거 없다고 뻑뻑우기니 참담하다. 미사일 한 대 얻어맞지 않았는데 자국민이 100만명 넘게 죽었고 원인 제공자는 밉상으로 보여서다. 특히 미국은 골드만삭스 등을 앞세워 30년 넘게 상하이방을 우호세력으로 중국의 자본력을 키웠다. 그런데 시진핑은 그들을 부패척결로 도려내었다. 중국은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슬그머니 러시아 편을 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인내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프렌드 쇼어링은 사실상 선전포고다. 전면전을 벌이면 핵으로 공멸하기에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물가 앙등을 감안하고서라도 중국산 제품을 끊어내겠다는 의지다. 특히 고부가가치, 기술집적 제품과 서비스 시장에서 중국을 퇴출시킨단 목적이 분명하다. 이른바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시장에서 그들을 키웠다가는 분명히 수년, 십수년 내 공격무기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국은 199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해 무역관계를 늘려왔지만 이제 저들은 30년 만에 한국기업들을 자국에서 사실상 몰아냈고 대중적자는 커져만 간다. 우리 내부에선 미국이 유리할지 중국이 유리할지 고민하면서 줄타기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적군과 아군은 분명했고 누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렸나를 돌이켜보면 이 선택은 셈법이 아니라 생존과 신의의 결단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은 피를 나눈 동맹이었지만 지난 정부는 실리외교를 하자며 중국에 더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며 촛불혁명 정권을 사실상 가까이 하지 않고 무시했다. 현 정부는 내부로부터 비판받지만 일본과 관계를 복원해 미국으로 향하는 다리를 놓았다. 미국은 FTA(자유무역협정)까지 맺었던 동맹이 실리를 외치며 십수년간 우왕좌왕하자 이제 자신들도 힘을 앞세운 실리를 주장하며 한국을 차갑게 대하고 있다.

무조건 친미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크롱이 실리를 외치며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앞에서 벌인 행동은 어떠해보였나. 전시에 동맹을 배신한 리더는 유럽에서도 비난받고 있다.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대통령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동맹 70주년에 맞은 중대한 기로점이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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