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간호법 찬성론(2)
간호사 연봉은 의사의 20% 수준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잘 나가는) 다른 나라들보다 격차가 크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직종별 임금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그 결과 간호사 면허소지자의 임상활동 비율은 절반밖에 안 된다.
간호법 제정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당정이 지난 11일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에서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중재안을 제시한 것도 심모원려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방향착오다.
직종별 임금격차는 처우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해법은 면허의 범위(scope of practice)에서 찾아야 한다. 현행법상 간호사의 업무는 요양간호와 진료의 보조다(각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5조 가목·나목). 그런데 요양간호라는 간호사의 고유업무가 사실상 형해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진료의 보조라는 면허 범위만으로는 간호업무의 독립적 영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 간호사의 역할영역은 외국에 비해 대단히 좁은 것이 사실이다.
의사에게 모든 역할과 책임을 돌려놓고 간호사를 비롯한 그 외의 직군을 모두 진료 보조행위만 가능하도록 설계한 현행 제도는 급성병 중심, 병원 중심 체계에 어울린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하에 이루어지는 수술·투약·주사처치 등 진료행위, 그리고 의료과오에 대한 전적인 책임 부여가 그것이다.
만성병 관리는 이 방식으로 작동 가능하지 않다. 고령화로 늘어난 의료수요 대응에도 마땅치 않다. 만성병은 환자와의 접촉면적이 중요하다. 병원과 지역사회 어디서건 지속적인 소통과 관심, 투약 여부에 대한 관리 등 요양간호가 독립적인 고유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간호사의 역할이 진료실 내에만 머물러서도 안 되고 의사 진료의 보조행위에만 만족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새로 제정되는 간호법은 질병 양상과 인구구조의 변화에 발맞추어 간호사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개정 간호법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면허 범위에서 제외한 결정은 아쉽다. 팥소 빠진 찐빵이 되어 버렸다. 의사협회는 한 발 더 나아가 목적 조항에서 "지역사회"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정협의회에서도 이를 수용했다. 팥소에 이어 찐빵도 없애는 꼴이다.
의사협회의 이기적인 독점권 추구야 온 국민이 다 아는 행태니 그렇다 치자. 간호협회의 주장도 마땅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간호협회가 간호조무사의 대학교육을 반대하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아니 학력을 더 요구해도 시원찮을 판에 학력을 제한한다는 게 무슨 발상인가. 더 많이 교육하고 더 큰 역할을 맡겨야 마땅하다. 이 점에서 고위당정협의회가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을 특성화고교 간호 관련 학과 졸업 이상으로 수정하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판단이다. 야당도 이 수정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응급구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임상병리사 등 다른 보건의료단체도 간호법을 반대한다. 간호사들이 전문적인 교육과 직업윤리도 배우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침탈한다는 것이다. 간호협회의 입장은 정반대다. 간호사는 의료인이고 나머지 직군은 비의료인이므로 자신들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간호협회는 구급대, 구급대원 배치 기준에 의료인 필수 규정을 신설하라고 제안했다. 비의료인인 응급구조사가 시행하는 의료행위의 확대방안은 정책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응급구조사를 배제하고 간호사가 다 하겠다는 소리다.
그냥 봐도 심하지 아니한가. 본인들의 업무영역은 늘리면서 다른 직역단체의 권리는 제한하려는 이중적 태도는 과도한 욕심이다. 오죽하면 간호제국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간호사 면허로 할 수 있는 직군이 130개가 넘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간호협회의 행태로 미루어 간호법이 간호제국을 무소불위의 철옹성으로 바꿀 거라는 우려에는 근거가 있다.
그러면 간호법은 거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필자는 2022년 1월 '투데이창'에서 "간호법 찬성론"이라는 제목으로 왜 간호법이 필요한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사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간호법이라야 한다. 현재 논의 중인 간호법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법이 통과되더라도 간호사의 활용성은 여전히 낮다. 간호조무사의 대학교육을 차단하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 타 직역보다 간호사가 우선해야 한다는 이기심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법은 제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고 비토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은 모두의 영역확대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향이다.
간호사를 포함하여 다양한 보건의료인의 활용성을 더 높일 방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PA제도의 도입과 실효성 있는 NP제도의 운용, 의사를 정점으로 하는 팀어프로치가 해법이라고 믿는다.
미국 PA제도는 석사과정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직군 출신이 PA가 된다. 물론 간호사가 PA 과정에 들어가기도 한다. 응급구조사, 비행응급구조사, 운동트레이너, 특수부대 의무병 같은 군인 출신도 있다. 이들이 위임받은 의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의사는 팀리더로서 PA를 지도·감독한다. 간호학 석사인 NP는 환자와의 독립적인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의사의 업무는 팀을 이끄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이어야 한다. 의료행위의 독점에만 열을 올릴 일이 아니다. 팀 중심의 자율적인 역할 분담과 협업이 필요하다. 팀어프로치는 공급확대의 강력한 방편이 된다. 여러 직역이 각자의 업무를 쪼개어 지대를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효율성을 추구할 수 없다. 업무 범위가 세세하면 팀워크를 해친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간호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PA제도가 도입되겠는가. 팀어프로치가 가능해지겠는가. 그저 간호사만 살찌우고 말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그냥 끝나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한 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바람직한 제도 설계를 위한 노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만에 끝낼 수 없다고 해서 아무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보건의료 시스템의 개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간호법이 그 시작일 뿐이다.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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