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사실 왜곡·호도한 책임은 누가 지나?
美의 전방위 도·감청, 사실로 드러나
국민 자존심 상처, 그냥 넘겨선 곤란
‘파이브 아이즈’ 가입은 그다음에
2012년 6월 이명박 정부 때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국무회의에서 즉석 안건으로 상정해 비공개 처리했다. 세계일보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국내 반발 여론에 밀려 지소미아는 서명식 직전에 체결이 연기됐다. 밀실 처리를 주도한 책임을 지고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수석급)이 물러났다. 사퇴하기 전까지 그는 대북 강경 정책을 주도한 대통령의 ‘실세 참모’였다.
그의 설명은 미국과의 엇박자로 오히려 의혹만 키웠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관련한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거나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한 것과 크게 상반된 탓이다. 도청을 저지른 국가가 미안하다는데 정작 도청을 당한 나라에서 괜찮다며 오히려 두둔하는 꼴이다. 동맹도 중요하지만 이런 사대는 조선 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 아닌가.
선을 넘었지만 김 차장 말대로 이번 도청 파문이 ‘위조’로 일단락됐다면 동맹인 미국의 일이니 한 번 눈감아 줄 수도 있었을 게다. 바람은 수포였다. 지난 1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방위군(공군)에 소속된 21세의 잭 테세이라 일병이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미국의 전방위 도·감청과 허술한 보안 관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러니 대통령실과 김 차장의 해명은 군색해질 수밖에.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나라 꼴이 이상해졌다”거나 “이런 코미디도 없다”는 조소(嘲笑)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꽤나 나돌았다. 가뜩이나 김 전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국빈 방문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올 상반기 최대 외교 이슈를 앞두고 갑자기 사의를 밝히고 물러난 마당이다. 지난 3월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파장은 여전하다. 외교 안보를 둘러싼 난맥상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미국의 도·감청 파문은 자국 이익 앞에 동맹도 가리지 않는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새삼 놀라워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가선 곤란하다. 사과나 재발 방지, 그것도 안 된다면 서운하다거나 불편하다는 식의 우회적인 입장 표명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는 게 그나마 일말의 국민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니까. 하지만 이를 외면하고 누군가 사실을 왜곡, 호도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게 마땅하다. 미국 주도 첩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 가입 추진은 그다음 일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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