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골프왕국 주인, 총수님은 모르쇠?
[9층시사국 12회 II] 총수님의 골프왕국
[프롤로그]
9층 시사국 취재팀은 이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골프장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동안 이호진 개인회사를 위해서 끊임없이 계열사의 자금이 동원됐습니다.”(음성대독)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부자가 아니면 얻을 수 없어 보이는 온갖 문건들도 들어있었습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음성변조)
저는 진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태광그룹 문건 양식에 정확하게 부합되기도 하고요.
태광 계열사 전 직원 (음성변조)
예 이건 뭐 이런 양식들입니다. 회사 직인도 맞고요.
제보자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10년 넘게 대주주의 개인 회사를 위해 계열사들이 부당지원을 해도 계속 빠져나가는 현실, 이런 상황에 일조한 임직원들만 주요 보직에서 일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낍니다. "(음성대독)
비리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총수가 인사권을 무기로 계열사들을 통해 여전히 사익을 취하고 있다는 제보.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타이틀]
골프왕국 주인, 총수님은 모르쇠?
[VCR]
이호진 태광그룹 총수의 ‘명품’ 골프장.
엄격한 회원제이지만 알고 보니 회원만 간 건 아니었습니다.
태광그룹 계열사 전 직원 (음성변조)
교육 연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서 갔는데 골프장으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흥국생명 전 직원 (음성변조)
그게 아마 4~50만 원짜리 교육이었을 거예요. 왜냐면 식사가 굉장히 코스로 나오거든요.
고급 골프장에서의 교육 연수, 좋다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았습니다.
태광그룹 계열사 전 직원 (음성변조)
전 계열사들이 그거 다 들은 거예요. 우리끼리 그 때 얘기가 ‘이거 골프장 밀어주기 하나? 개장하고 난 다음에?’
흥국생명 전 직원 (음성변조)
계층별로 했어요. 직급별로. 먼저 고직급자를 ‘리더의 품격’이라고 해서 교육을 한 번 하고, 직원들 다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직급별로 대리...
값비싼 교육비가 총수님의 골프장에 지급됐습니다.
티브로드 전 직원 (음성변조)
밥값이 25만 원인가 그래요. 왜냐하면 코스요리를 먹었어요. 제일 비싼 거. 그리고 와인 교육을 했어요. 그리고 카트로 한 바퀴 투어를 했어요. 그래서 버스 대절하고 하면 한 사람당 최소 100만 원.
태광 측이 밝힌 교육비는 한 사람에 60만 원.
김여일/태광그룹 홍보실장
임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비즈니스 매너 함양을 위한 교육입니다. 연수비용은 말씀하신 수준보다 훨씬 금액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지난주 ‘9층시사국’ 보도 이후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호진 태광그룹 총수와 골프장 운영회사인 티시스 김기유 대표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김남국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
경영기획실 차원에서 협력업체들이 (회원권을) 구매하는 대가로 독점적으로 장기적인 거래를 하도록 만들다보니까 적정한 가격으로 제품들을 구매하지 못하거나 또는 필요 없는 제품들을 구매하도록 함으로 인해서 계열사들이 손해를 입도록 한 것입니다
총수의 골프장, 그룹 직원들에게는 애물단지로 보였습니다.
흥국생명 전 직원 (음성변조)
회원권뿐만 아니고 김치 와인부터 시작해서 연수 프로그램 만들어가지고 연수하고.
[스튜디오]
남현종
지난주 방송에 이어서 계속해서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회장님의 골프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룹 전체가 동원돼서 벌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네요.
송명희
그렇습니다. 골프장 상품권 19억 원어치를 계열사들이 무더기로 사들인 사건이 있었고요, 그리고 골프장 ‘접대 리스트’라는 것이 폭로가 돼서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또 골프장에서 김치를 만들어서 계열사에 팔기도 했습니다. 모두 이호진 총수가 배임 횡령 사건으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이루어진 일입니다.
남현종
기간을 보면 그룹 총수 재판 중에도 다른 한 쪽에서는 계속해서 은밀한 사업들이 계속 진행돼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태광 계열사 흥국생명의 해고자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가 나와 있습니다. 황당하잖아요, 골프장에서 김치를 만들어서 판 게. 어떤 사건이었는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더 황당한 게 김치를, 그렇게 만든 김치를 성과급으로 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직원 성과급으로 김치가 나오고, 세금까지 공제가 되니까 불만들이 있는데,
남현종
누가 만들었습니까.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골프장 직원들이 만든 거죠. 캐디가.
이런 김치를 전 전 계열사에 강매한 사건이고, 와인은 총수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메르뱅이라는 와인을 전 계열사에 강매한 건데요. 19개 계열사가 김치 95억, 와인 46억, 총 141억 원 어치를 구매한 사건입니다.
남현종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이호진 총수의 책임은 어디까지 규명이 됐습니까.
송명희
검찰은 당시 골프장 운영회사였던 티시스의 김기유 대표만 기소했습니다. 이호진 총수에 대해서는 직접 지시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예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특히 언론 보도에 따르면 티시스가 모든 자료를 폐기했기 때문에 직접 증거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요.
송명희
이번에도 태광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호진 총수는 전혀 몰랐다. 협력업체의 업무협약과 회원권 판매에도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겁니다. 일단 태광 측 입장 먼저 들어보시죠.
김여일 태광그룹 홍보실장
이호진 전 회장은 2012년 그룹의 모든 직을 내려놓고 현재 그룹 경영에 일체 개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건 역시 이 전 회장에게 보고를 하거나 지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남현종
그런데, 앞서 설명하신 김치와인사건 행정소송에서는 대법원이 이호진 총수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이호진 총수가 직접 개입은 안 했으나 모든 정황 증거를 봤을 때 간접 개입은 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그 영향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하셨기 때문에 관여했다고 보고, 이호진 총수에게 책임이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되돌려보냅니다.
송명희
여기서 핵심이 바로 그룹 경영기획실입니다. 말씀하신 김치 와인사건에서 경영기획실이 주도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이런 일을 했는데, 이번 협력업체 회원권 판매 사건에서도 지금부터 설명을 드리겠지만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김치와인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보면 이번 협력업체 회원권 판매 사건에서 총수의 책임이 어디까지 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VCR]
2014년 만들어진 태광그룹 경영기획실.
그룹 측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태광그룹 관계자(음성대역)
이호진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방만한 그룹 경영을 바로 잡기 위해서 비상경영체제가 필요했습니다.
(13층이 없네요.)
(13층에 혹시 경영기획실이 있나요?)
조직도 내에서 봐도 안 나와서...
그룹 관계자들은 경영기획실은 곧 이호진 총수였다고 증언합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음성변조)
태광그룹 내에서 전 계열사들이 경영기획실장의 지시나 어떤 방향성에 대해서 이거는 총수의 뜻이다라고 받아들였고요. 그거는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룹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계열사 사장이 모르는 상태에서 임원 인사까지 경영기획실이 할 정도였다”며,
“총수의 지시 없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고 했습니다.
2014년 5월, 그룹이 경영기획실을 만들 당시 계열사들이 쓴 상호업무협약서입니다.
9개 계열사가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룹 부회장 직속으로 경영기획실을 뒀는데, 업무처리지침을 통해 계열사의 인사, 재무, 대외협력 등 주요 경영 내용을
경영기획실과 협의하게 했습니다.
보고 주기까지 지침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룹의 시너지 창출’이 목적이라고 썼습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죠. 이 자리에서 경영기획실의 지침들이 하달이 됩니다. 이 지침들은 총수의 지시로 인식되어져서 계열사들이 그대로 토를 안 달고 그대로 시행을 했고요 그 당시에. 사실상 경영기획실장이 총수의 경영을 대리하는 실질적인 회장의 역할을 했었다.
외부법인과 거래도 5천만 원이 넘으면 사전협의 대상, ‘그룹 시너지 관련 사항’ 라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
대법원이 김치, 와인 사건에서 주목한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대법원은 경영기획실장과 이호진 총수가 경영 상황과 실적을 서로 수시로 보고하고 또 지시했고, ‘그룹 시너지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외부거래를 제한했으며, ‘그룹 시너지’를 중요한 임원 평가 항목으로 채택해 계열회사들에게 골프장을 지원할 동기를 제공했다고 봤습니다.
다시 말해 이호진 총수가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이호진 전 회장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이런 김치, 와인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겠느냐. 그런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거 이호진 회장이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호진 회장에 대해서는 제재를 하지 못한다면 사익편취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려는 법의 취지나 규제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대법원 판결에 많이 참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보자가 보낸 경영기획실 내부 문서에서 낯익은 문구가 확인됩니다.
‘시너지 추진 현황’
골프장 회원권을 놓고 매출 보장, 장기독점 계약 등의 조건을 앞세워 협력업체들과 협상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협상을 시작한 날짜, 성사 여부, 업무협약 결과, 특이 사항 등도 남아 있습니다.
한 리조트 회사와는 ‘1:1 바터’, 즉 회원권 교환을 조건으로 협상 한 달 만에 업무협약을 체결한 거로 돼 있습니다.
흥국생명 전 직원(음성변조)
저희가 (회사 휴양소가) OO리조트만 있었는데, 갑자기 휴앙소가 ##리조트가 늘어났어요.
태광그룹 계열사 전 직원(음성변조)
휴양소가 늘어났다고 직원들이 좋아하긴 했죠. 그 때. 우리는 왜 늘어난 건지 그때는 내용을 알 수가 없었죠.
이 리조트 회사는 업무협약일로 기록된 당일 골프장 회원권 두 개를 샀고, 다음해 두 개를 더 사들였습니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직접적으로 계열회사 간 거래를 통해서 총수 일가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심사지침에 따르면 중간에 협력업체와 같은 제3자를 매개로 해서 간접적으로 이익을 제공하는 것도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익편취에 해당하다고 보아서 그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남현종
이렇게 체계적으로 문서까지 만들어가면서 관리를 했던 걸 보면 골프장 회원권 판매도 경영기획실이 주도를 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경영기획실이 ‘그룹 시너지’라는 말을 계속 키워드처럼 내세우고 있잖아요. 그룹 시너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좋은 단어죠. 계열사들끼리 힘을 합쳐서 의샤의샤 해서 뭔가 새로운 이익들을 창출해 보자, 이런 좋은 의미인데, 지금 태광의 사례들을 앞서 이야기 한 것들과 두루 살펴봤을 때는 그룹의 시너지가 아니고, 이호진 총수 일가를 위한 시너지다, 저는 이렇게 보입니다.
남현종
지난주 방송이 나간 뒤에 태광 측은 어떤 입장을 밝혀왔습니까.
송명희
실제 계열사의 손해는 없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업무협약서로 매출 보장, 장기 독점 계약 등을 약속하면서 추가로 명시한 조건이 정수기 업체를 바꾸면서 위약금은 태광이 부담하겠다, 그리고 회원권을 구매하기 위해서 대출을 받으면 이자는 태광이 부담하겠다 이렇게 썼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진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김여일 태광그룹 홍보실장
협력사와 계열사 간에 협력 차원에서 맺은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 수준의 협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당이익에 해당된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이제 바로 검찰의 수사가 필요한 이유죠, 아니,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이런 장기 계약을 한다? 저는 납득이 되지 않고요, 어느 사업가가 대출을 받아서 골프장을 산다?
남현종
보통은 이런 일이 없는 거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대출 이자보다 그 이익이 보장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남현종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것은 경영기획실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그룹 총수, 이호진 전 회장이 얼마나 알고 있었냐가 또 중요한 핵심일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김치와인사건 대법원 판결을 보면 이번에도 당연히 지시하거나 개입했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 의심입니다. 회장에서 물러난 총수가 영향력을 이용해 경영기획실을 움직여서 사익을 편취했다, 이렇게 해석됩니다.
남현종
결과를 좀 지켜봐야 될 것 같고요. 그런데 결국 최종적으로 보면 태광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에게도 많은 피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송명희
이런 일이 있을 당시에 골프장 지분 100%를 가지고 있던 총수 일가의 부, 그러니까 이 재산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져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협력업체에 유리한 계약을 해주면서 그 계열회사, 그리고 말씀하신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고, 그 손해가 결과적으로는 이호진 총수 일가에게로 이전이 됐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전이 되는 것이 공정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편취에 해당되고, 그래서 총수의 사익편취의 가능성, 공정거래법 위반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VCR]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행동주의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
지난달 열린 주총에서 주당 만원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액면분할을 요구했지만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
가장 큰 문제점은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이해관계가 정반대에 있다는 점, 그리고 대주주가 회사를 자기 개인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이사회 등 감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회사 계열사들이 회사 자체가 아니라 대주주를 위한 경영을 해왔다는 것이죠. 만약에 이런 사례가 계속 되풀이 된다면 태광그룹 계열사뿐만 아니라 태광그룹 전체가 사실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형철/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공동대표
이호진 전 회장이 어쨌든 5년간 취업제한에 걸려있긴 하지만 다 지시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는 어떤 형태로든 돈을 그룹이나 계열사에서 빼가는 거고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법망을 피해가려고 하는 그런 행태만 벌어지고 있는 거잖아요. 전적으로 이건 총수의 책임이고,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취재기자: 송명희
외부촬영: 조선기 설태훈
영상편집:김대영
자료조사: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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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희 기자 (thimbl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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