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국적인’ 에드워드 호퍼와의 첫 조우
에드워드 호퍼 한국 첫 전시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삭막한 외로움. 건조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캔버스 위를 흐른다. 그 앞에서 애잔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대도시의 고독을 가장 잘 포착한 작가’,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첫 한국 개인전이 2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호퍼의 독보적 연구 자산을 확보했다고 평가되는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기획이다. 지난 3월 5일 막을 내린 휘트니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에 이어 바로 진행되는 전시다.
한국 관객에게 호퍼는 익숙하지만 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몇 해 전 ‘쓱(SSG)’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신세계 온라인몰 광고가 호퍼의 작품을 오마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정작 그의 원작이 한국 관객에게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점과 아카이브 자료 110여점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유명세 때문인지 이미 6월까지 티켓이 모두 예매가 끝났다.
전시는 학생 시절 드로잉부터 말년의 스케치까지 작가 전 생애를 포괄한다. 도시인의 고독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화보다는 풍경, 자신의 집 전경, 교외, 뉴욕의 거리 등 풍경화와 스케치의 비중이 더 높아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호퍼의 첫 커리어는 작가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작가가 되길 갈망하던 호퍼는 3회에 걸친 파리 방문으로 ‘빛’에 눈뜨게 된다. 이후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빛을 다루는 방식은 호퍼만의 스타일로 굳어진다. 화폭을 사선이나 평행으로 가르는 대범한 구도의 작품을 시도하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미국스러움’은 그가 평생 고민했던 화두다. 유럽의 아류가 아닌 미국 미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킴 코나티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는 “호퍼는 1910년 이후로 다시는 유럽을 방문하지 않았고, 이후 아내와 로드 트립 중 멕시코에 갔던 것이 미국을 벗어난 유일한 경험이었다. 작가에게 미국은 특별한 어떤 것”이라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도시, 아주 작은 마을, 광활한 자연, 또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미국을 관찰했다. 서로 다른 성격이 주는 긴장감이 그가 느끼는 미국이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에 호퍼의 ‘도시와 집, 사우스트루로’(1930-33)를 오랜 기간 걸어놓았다. 낡은 시골 집 너머로 평야와 구릉이 펼쳐지는 매우 심심한 풍경화다. 또한 미국 시골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100년 가까이 된 그의 작품이 지금도 각광을 받는 이유는 작품에서 묻어 나오는 ‘도시인의 고독’ 때문이다.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 산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엔 호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이트호크(Nighthawks)’(1942)는 포함되지는 않았다. 대신 드로잉이 왔다. 간결한 흑백 스케치이나, 늦은 밤 작은 식당에서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단절과 외로움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에칭 작업에서도 작가는 도시의 풍경과 심상을 담아낸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도시, 그 도시의 밤은 성장통을 앓는다. 눈부신 발전만큼 그림자는 어둡고 깊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짙은 다크 서클을 하고 무표정하다. 애써 친절하려고, 꾸미려하지 않는 민낯에서 피로감과 공허함이 뒤엉킨다. 킴 코나티 큐레이터는 “호퍼는 고독과 외로움을 그린다. 누구나 경험하는 고독의 순간들이 있기에 지금에도 반향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회복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고 말했다.
호퍼의 작업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1960년대, 작가 말년에 들어서야 뒤늦게 유명세를 얻었고, 동시대 팝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일상의 한 순간을 정지시킨 듯한 호퍼의 화법이 큰 관심을 받았다.
그의 작업은 구상에 가깝긴 하지만, 사실 천착했던 것은 ‘형체’와 ‘색’ 그리고 ‘빛’이었다. 여느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같은 결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을 높게 평가하던 미니멀 아티스트들이 많다. 캔버스에서 빛을 다루며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호퍼 특유의 스타일은 형광등으로 설치 작업을 하던 댄 플라빈에게 영향을 줬고, 단순한 순간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은 후대 사진작가들과 영화감독에게 회자됐다.
뿐 만이랴. 소설가와 시인들 중에도 호퍼의 팬이 많다. 2016년엔 호퍼의 그림을 흠모하던 17명의 작가가 작품을 1개씩 선정 한 뒤, 이를 바탕으로 단편 소설을 쓰고 책(빛 혹은 그림자, 문학동네)으로 출간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로런스 블록은 서문에 “호퍼는 캔버스 위에 펼쳐진 시간 속의 한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거기엔 분명히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실제로 작가들은 한 장면에서 출발한, 혹은 과거에서 출발해 특정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푸른 저녁’(1914)에서는 화가인 남자와 뮤즈인 여자 그리고 피에로가 얽히는 판타지 스릴러가, ‘밤의 창문’(1928)엔 성폭행 당한 동생의 복수를 감행하는 언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호퍼가 노력형 천재였다는 점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호퍼는 그리고 또 그렸다.
그는 자신의 집 계단에서 밖을 내다보는 작품 ‘계단’(1949)을 위해 스케치로 습작을 그렸다. 문 밖으로 보이는 옆집은 유화에선 숲으로 바뀌었다. 맨하튼의 아파트를 그린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1930년경)도 마찬가지다. 호퍼는 여러번 같은 풍경을 그리며 찻길을 강으로, 다시 나무 숲으로 바꾸어 그렸다. 도시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징을 잡아 스케치한 인물들은 후일 유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호퍼의 가장 큰 조력자는 아내인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였다. 뉴욕예술학교 동창이자 작가였던 조세핀은 호퍼와 결혼 이후 그의 매니저이자 아내로 살았다. 능력이 넘쳤던 조세핀과 그의 재능을 질투하고 억눌렀던 호퍼의 사이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부부이자 파트너로 오랜 기간 함께 활동했던 것은 사실이다.
호퍼 작업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조세핀을 모델로 한다. 조세핀은 결혼하면서 더 이상 작가로 활동하지 못했으나, 그림 속에서 남편과 함께 늙어갔다. 호퍼의 작업 하나하나의 특징과 작업 당시의 특징을 꼼꼼하게 메모한 조세핀의 장부는 카탈로그 레조네 초판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전시에선 이런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섹션도 마련됐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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