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열었던 튀니지…공포통치에 다시 겨울정국

손우성 기자 2023. 4. 19. 21: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이끈 야권 인사
정부 비판한 이유로 체포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민주주의 바람을 몰고 왔던 ‘아랍의 봄’ 발원지 튀니지의 정치적 혼란이 점입가경이다. 2019년 정권을 잡은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사진)의 철권통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권 핵심 인사이자 아랍의 봄을 주도한 라체드 가누치 엔나흐다 대표가 전격 체포됐다. 정부를 비판해 체제 안정을 해쳤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이에드 대통령의 폭주를 제어해야 할 야권도 ‘아랍의 봄’ 이후 실정을 거듭하며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18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튀니지 경찰은 전날 밤 가누치 대표와 엔나흐다 간부 2명을 체포하고 엔나흐다 사무실을 폐쇄했다. 튀니지 당국은 가누치 대표 딸의 집도 압수수색했다.

가누치 대표는 튀니지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1980년대부터 비폭력 이슬람주의를 원칙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1987년 쿠데타로 집권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특히 2010년 12월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하며 촉발된 아랍의 봄 민중 봉기를 주도해 민선 정부 수립을 이뤄냈다. 그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청에도 주요 보직을 모두 사양하는 겸양도 보였다. 하지만 튀니지는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 갈등, 부정부패 등으로 아랍의 봄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2019년 10월 헌법학자 출신 사이에드 대통령 당선 이후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했다.

지난해 7월 사이에드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임기 5년에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이 ‘임박한 위험’을 이유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조항도 담겼다. 정권을 향한 불만이 거세지자 올해 들어 비판 세력을 잇달아 잡아들이는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지난달엔 최측근이자 강경파인 카말 페키 전 튀니스 주지사를 내무장관에 임명하며 야권 인사 탄압 수위를 높였다.

문제는 사이에드 대통령의 실정을 바로잡을 세력이 없다는 데 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총선 투표율이 8.8%에 그친 것은 여권과 야권에 모두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년 동안 심해진 경제난으로 튀니지인 상당수는 유럽으로 떠나야 했다”며 “많은 튀니지인은 엔나흐다와 야당 연합이 사이에드 대통령을 밀어내고 권력을 되찾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