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조작” 가짜뉴스 보도한 폭스, 개표 업체에 1조원 배상
“개표기 조작했다” 주장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해
결국 양측 합의로 마무리
언론의 명예훼손 ‘최고액’
2020년 미국 대선 사기 주장을 퍼뜨리며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집중 보도한 폭스뉴스가 개표기 업체에 1조원이 넘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폭스뉴스는 투·개표기 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7억8750만달러(약 1조39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양측의 합의가 성사되면서 이번 소송은 공개재판 없이 합의금으로 마무리됐다.
도미니언 측 저스틴 닐슨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진실이 중요하다”며 “거짓말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했다. 존 파울로스 도미니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의를 두고 “역사적”이라며 “폭스뉴스는 우리 회사, 직원 및 고객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거짓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디어의 진실된 보도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하자, 28개주에 투·개표기를 공급한 도미니언이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도미니언이 개표기를 조작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찍은 표를 바이든 대통령 표로 바꿔치기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도미니언은 회사의 이익과 신뢰를 훼손했다면서 2021년 1월 폭스사에 16억달러(약 2조원)의 배상금을 청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폭스뉴스는 이 소송을 각하해줄 것을 지난해 델라웨어주 상급법원에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폭스뉴스의 경영진과 유명 진행자도 선거 조작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는 내부 e메일과 증언 등이 최근 공개됐다. 이 같은 내용대로라면 폭스뉴스는 대선 조작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도한 셈이 된다.
배상금에 합의한 후 폭스뉴스 측은 “도미니언에 대한 특정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을 인정한다”면서도 도미니언 측에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는 최고의 저널리즘에 대한 폭스뉴스의 지속적인 노력을 반영한다”면서 “도미니언과의 분쟁을 분열적인 재판 대신 우호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우리의 결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에서 국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CNN은 이번 합의금 규모가 미디어에 의한 역대 명예훼손 사건 중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7억달러가 넘는 이번 합의금은 폭스뉴스 정도 규모의 회사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수입 29억6000만달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러나 CNN은 “이 같은 거액의 합의금도 폭스뉴스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면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폭스뉴스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보도를 철회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학자와 미디어업계 관계자들은 도미니언이 끝까지 합의하지 않고 소송을 끌고가 폭스뉴스 경영진과 진행자들을 재판장에 세워주길 촉구하기도 했다. 재판장에서는 배심원들에게 사실에 근거한 발언만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만약 재판이 실제 진행됐을 경우 ‘언론·출판 등의 자유’와 관련된 미국 수정헌법 1조상 폭스뉴스 경영진이 허위 방송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폭스뉴스는 또 다른 개표시스템 업체인 스마트매틱과의 두 번째 명예훼손 소송에 직면해 있다. 스마트매틱은 폭스뉴스에 27억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며 여전히 소송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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