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죽지 않았다" 올시즌의 주인공은 '감동' 캐롯 아니었을까
"뭐 저런 애들이 있나 하는 표정이더라구요"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 끝난 뒤 고양 캐롯과 안양 KGC인삼공사 선수들의 표정은 비슷했다. 결코 깊지 않은 선수층으로 6강 5차전 혈투를 치르고 올라온 캐롯 선수들은 지친 기색이었다. 3차전을 이긴 KGC인삼공사도 그랬다. 0-15로 시작한 경기를 뒤집기 위해 풀-코트 프레스 수비를 앞세웠고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감수했다.
김승기 캐롯 감독은 "안양의 앞선 수비가 정말 좋았다. 강했다"고 평가했다. KGC인삼공사도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 취재진의 말에는 "(우리 애들을 보면서) 뭐 저런 애들이 있나 하는 표정이더라"고 답하며 웃었다.
캐롯은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캐롯은 시즌 전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성현의 존재감과 이정현의 급성장, 디드릭 로슨의 활약 그리고 롤 플레이어들의 공헌이 더해져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썼다. 기세를 몰아 6강에서 5차전 접전 끝에 울산 현대모비스를 잡고 4강에 진출했다.
캐롯의 4강 진출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그들의 정신력 때문이다. 캐롯 구단은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올 초부터 급여 지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농구 팬들은 속상함을 느꼈고 캐롯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타 구단의 선배에게 "용돈 좀 주세요"라는 농담을 건네는 선수들도 있었다.
캐롯 선수들은 월급이 밀려있는 상태에서 포스트시즌을 시작했다. 성적이 좋다고 해서 급여가 바로 지급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동기부여가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4강행 기적을 쐈다.
김승기 감독은 정규리그 챔피언과 대결을 앞두고 "그냥 죽지 않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1차전에서 56점 차 완패를 당했지만 원정 2차전을 잡는 저력을 발휘했고 3차전도 접전 끝에 분패했다. 놀라운 투혼이었다.
농구 팬들은 캐롯 선수들에게 '감동'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재정난을 겪고 있는 데이원스포츠(캐롯은 네이밍스폰서)와 회사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회원사 가입을 허락한 KBL은 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을 향한 시선은 다르다. 그들의 열정은 팬들을 뜨겁게 만들었다.
캐롯 구단의 팬들은 선수들을 위해 다양한 선물을 보냈다. 주로 식사나 먹거리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장어덮밥을 선물했다. 장어덮밥을 함께 먹었다는 김승기 감독은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팬들께서 우리를 이기게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선수들이 1년 만에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팬들도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김승기 감독은 "감독 생활을 하면서 팬들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우리 팬들은 최고다. 선수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크다. 뭘로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동' 캐롯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
캐롯은 19일 오후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4강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KGC인삼공사에게 61-89로 졌다. 시리즈는 KGC인삼공사의 3승 1패 승리로 끝났다. KGC인삼공사는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캐롯은 지쳤다. 이정현은 전반에만 두 차례 블록슛을 당했다. 야투는 부진했다. 패스를 받기 위한 동료들의 움직임도 날렵하지 않았다. 충분히 들어갈만한 슛은 림을 돌아 나왔다.
반면, KGC인삼공사는 에너지로 캐롯을 압도했다. 특히 문성곤의 활약이 대단했다.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1쿼터에만 13점을 몰아넣었다. 2쿼터에는 식스맨 정준원의 득점이 폭발했다.
KGC인삼공사는 전반을 47-26으로 마쳐 승기를 잡았다. 후반 들어 양팀의 에너지 레벨은 점점 더 큰 격차를 보였다. 3쿼터 중반 오마리 스펠맨의 3점슛이 터지면서 점수차가 30점 이상으로 벌어졌다. 오세근은 3쿼터 종료와 동시에 장거리 버저비터를 터뜨려 KGC인삼공사 벤치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래도 캐롯 선수들은 끝까지 뛰었다. 이정현은 4쿼터 중반 더 이상 코트 위를 달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교체해달라는 사인을 내지 않았다. 김승기 감독이 그런 이정현을 보고 교체를 단행했다. 선수들은 시즌 종료가 확정된 뒤에도 한동안 코트에 남아 끝까지 응원해 준 팬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KBL 회원사 가입 때부터 불거진 잡음, 시즌 개막 전부터 제기된 재정난 우려, KBL 최고 슈터로 도약한 전성현의 대활약, 플레이오프 진출, 4강 진출 그리고 정규리그 챔피언과 치열한 승부까지, 캐롯 구단은 시즌 내내 이슈를 만들었다. 좋은 내용이든 아니든.
캐롯 구단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데이원스포츠가 농구단을 계속 끌고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사례를 돌아봤을 때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가 떨어진 프로농구 구단의 인수 작업은 늘 난항을 겪었다.
농구 팬들은 지금 캐롯 구단의 멤버들을 더 보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캐롯은 김승기 감독의 지휘 아래 이정현과 전성현이라는 스타들을 앞세워 파격적인 공격 농구로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색다른 매력을 발산한 캐롯 선수단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다음 시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모든 농구 팬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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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CBS노컷뉴스 박세운 기자 sh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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