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조작" 보도한 폭스뉴스... 개표기 업체에 1조 원 물어 준다

조아름 2023. 4. 1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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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수 언론 폭스뉴스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도미니언)'이라는 이름의 투·개표기 업체에 1조 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 주기로 했다.

2020년 미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투표 조작' 의혹을 충분한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집중 보도한 탓이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성향 매체인 폭스뉴스는 2020년 11월 대선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에 편향된 보도를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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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언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2년 만에
'7억8750만 달러 배상' 합의... 청구액 절반
미 언론사 상대 명예훼손 소송 최대 배상금
"폭스, 의도적 악의 보도... 선 넘었다" 평가
18일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 법원 앞에서 한 시민이 '폭스는 유죄'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의 보수 언론 폭스뉴스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도미니언)'이라는 이름의 투·개표기 업체에 1조 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 주기로 했다. 2020년 미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투표 조작' 의혹을 충분한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집중 보도한 탓이다. 해당 금액은 미국 언론 보도와 관련한 명예훼손 소송 중 최대 규모의 배상금인 것으로 알려져, 미 언론사(史)도 새로 쓰이게 됐다.


2년 법적 공방 끝... 폭스사 "1조 원 배상하겠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 CNN방송 등에 따르면, 폭스뉴스는 도미니언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회사 명예가 훼손됐다"며 낸 소송과 관련해 7억8,750만 달러(약 1조380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원고 측과 합의했다. 2021년 3월 도미니언이 델라웨어주 대법원에 폭스뉴스를 상대로 16억 달러(약 2조1,1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지 2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합의금은 애초 도미니언 측의 청구 액수 절반에 그쳤으나, CNN 등은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 언론사 상대 명예훼손 소송에서 최대 배상금"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성향 매체인 폭스뉴스는 2020년 11월 대선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에 편향된 보도를 일삼았다. 투표기 조작 의혹부터 '대선 사기' 음모론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근거 없는 주장을 그대로 인용 보도한 것이다. 주로 "대선 당시 28개 주(州)에 투·개표기를 공급했던 도미니언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당선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투표 결과를 바꿨다"는 내용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시드니 파월, 루디 줄리아니 등과의 인터뷰도 수차례 내보냈다.

소송 과정에서 폭스뉴스는 "트럼프 측 주장을 뉴스로 판단해 보도했을 뿐"이라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미국에선 언론사에 명예훼손 책임을 묻는 게 여간해선 쉽지 않다. 1964년 미 연방대법원이 언론 매체에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언론 보도에 따른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이런 관행이 굳어졌다.

미국의 투표기 업체인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의 변호인들이 18일 폭스뉴스와의 합의 사실을 밝히면서 미소 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의도적 음모론' 증거에 두 손 든 듯

하지만 폭스뉴스 내부 논의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도미니언은 폭스뉴스 경영진과 제작진이 '부정 선거' 주장을 믿지 않으면서도 방송에선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 정황이 담긴 이메일 등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더 극우적인 매체에 눈을 돌릴 것을 우려한 폭스뉴스 설립자 루퍼트 머독 회장과 진행자 터커 칼슨 등이 '음모론' 보도를 밀어붙였다는 내용이다.

컬럼비아대 '수정헌법 1조 기사 연구소'의 케이티 팔로우 변호사는 "폭스는 단순히 거짓말을 보도한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선을 넘었다"며 "허위사실 유포로 언론사에 금전적 책임을 묻는 것이 정당해 보이는 드문 경우"라고 평가했다.

도미니언의 변호인인 저스틴 닐슨 변호사는 합의 소식 발표 후 "거짓말엔 대가가 따른다. 2년 전 엄청난 거짓이 도미니언과 국가에 심각한 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AP통신은 폭스뉴스의 이번 배상금이 지난해 폭스 총 매출(29억6,000만 달러)의 4분의 1에 달한다고 전했다. 폭스뉴스는 또 다른 개표시스템 업체 '스마트매틱'과도 27억 달러(약 3조5,000억 원)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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