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없이 세수 결손 막겠다" 이 말에 숨은 불편한 함의
秋 “추경도 세입경정도 없다”
재정지출 효율화 강조했지만
비공식적 지출통제하면 안 돼
"세수 상황이 올해 내내 녹록지 않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 1~2월 누적 국세수입이 줄자 세수 결손 우려가 나왔는데, 추 부총리가 세수 결손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정부가 올해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를 계산해서 어떤 사업에 얼마의 예산을 쓸지 정해놨는데, 수입이 모자라게 됐으니 대책이 나와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날 추 부총리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물음에 "전혀 없다"면서 "세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여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고 의원은 "세입경정(추경을 통해 세입을 맞추는 것)을 하지 않을 것이냐"고 재차 물었고, 추 부총리는 "세수가 얼마나 들어올지 다시 계산하더라도 추경(세입경정)으로 연결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화를 풀어보면 대략 이런 의미다. 정부는 매년 수입과 지출을 계획해서 예산을 짜고, 그 돈으로 재정활동을 한다. 수입과 지출은 딱 맞아떨어지게끔 설계돼 있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수입이 증가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면 추경을 통해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게 일반적이다. 수입이 늘어날 것 같으면 그에 맞춰 지출을 더 늘리고, 수입이 줄어들 것 같으면 지출을 줄이는 거다. 다만, 추경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애초에 예산안이 국회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어서다.
중요한 건 추 부총리는 세수 결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추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추경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기재부가 수입과 지출을 맞출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국채발행밖에 없다. 빚을 내서 수입을 맞춰야 한다는 건데, 국채발행은 현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기재부는 이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겠다는 걸까. 아니다. 이날 추 부총리는 "재정지출 효율화를 먼저 살피겠다"는 대답을 내놨다. 재정지출 효율화란 별다른 게 아니다. 계획된 예산 사업을 다시 검토해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게 있으면 줄이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재정지출 효율화를 꾀하는 공식적인 방법이 바로 추경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추경은 안 하겠다고 했으니 추 부총리의 말은 '기재부가 알아서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재정지출 효율화를 하겠다'는 걸 대놓고 한 셈이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물론 정부는 재정지출 효율화를 꾀할 수 있지만, 기재부의 방식엔 문제가 있다"면서 "공식적인 방법인 추경을 놔둔 채, 국회 동의도 없이 기재부가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지출을 통제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되면 기재부 입맛대로 지출 통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런 방식으로 재정지출 효율화가 진행된다면 민주주의 시스템을 훼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차하면 예산을 계획대로 다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겠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세수 결손이 대국민 행정서비스의 질적 악화로 이어져 국민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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