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원형…‘여성 농악 뿌리’ 남원 원로들
[KBS 전주] [앵커]
한국 농악의 뿌리인 남원은 여성 농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한데요.
잊혀졌던 남원의 여성 농악인들이 수십 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닦고 서울 공연 여정에 나섭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상쇠의 지휘따라 장단을 채우고, 어깨춤을 더하며 흥을 돋웁니다.
깊게 팬 주름골에 몸짓은 느릿하지만, 박자를 짚는 당찬 소리엔 여전히 날이 섰습니다.
아흔셋 나이가 무색하게 농악대를 조율하는 현역의 감각.
["나만 따라오시오들. (네.)"]
국내 여성 농악 1세대 남원 여성농악단의 상쇠 장봉녀 원로입니다.
[장봉녀/남원 여성농악단/상쇠 : "손도 안 돌아가고, 순서도 잊어버렸고. 단원들이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지휘하지 혼자 어떻게 지휘하겠어요."]
전국 최초 여성으로만 구성됐던 남원 여성농악단.
천9백59년부터 10년 넘게 전국을 돌며 대중을 웃고 울린 이들은, 남성 농악단을 누르고 전국 농악대회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배분순/남원 여성농악단/장구 : "지금 같으면 아이돌같이 인기가 많았지. 막 줄줄 따라다니고. 하여튼 한국에선 안 간 데가 없어."]
여성 농악단의 원형을 만들고 춘향제의 핵심인 제향을 봉행하며 남원 농악의 이름값을 드높였습니다.
[박복례/춘향 여성농악단/소고 : "아무리 아파도요 준비 싹 하고 악기 탁 소리 나면 아픈 게 어디로 가 버리고 없어요. 끝나고 나선 나 죽겠다…."]
70년대 TV가 보급되고 정부가 공연 예술을 옥죄자 설 자리를 잃고 결혼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이들.
잊혀졌던 이들의 존재를 되찾은 건 시민들이었습니다.
춘향제의 뿌리를 짚다 여성 농악 역사를 재발견했고, 네 명의 원로를 중심으로 무대를 다시 꾸린 겁니다.
병상에 누워 지내거나 무대를 잊고 살던 원로들은 60년의 세월을 돌아 농악인으로 다시 섰습니다.
[김양오/동화작가 : "남원국악원의 근간을 만드신 분들이세요. 춘향제를 그 어려운 시절에 계속 이어온 분들이세요. 굉장히 큰 일을 하셨고 은인과 같은…."]
주마다 호흡 맞춰 손끝을 벼려 온 원로들, 이번엔 여성 농악 복원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연희단 팔산대와 나란히 서울 무대에 섭니다.
남원 춤의 상징 조갑녀 명인을 계승한 정명희 선생의 민살풀이춤과 어우러지는 이번 공연은 오는 22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립니다.
[장봉녀/남원 여성농악단/상쇠 : "웃음 얻고 내려와야죠. 잘 놀았소, 잘 구경했소. 그 말이 제일 듣고 싶은…."]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안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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