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사로 없어 당황, 도로 턱에 걸려 아찔…갈 길 먼 장애인 이동권

정지윤 기자 2023. 4. 1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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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에 의지해 길을 가니, 1㎝의 작은 틈만 느껴져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19일 오후 2시 부산 남구장애인복지관 인근 인도.

남구는 2021년 '장애인 등 이동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 지원 조례안'을 부산 최초로 만들어 지난해와 올해 각각 500만 원의 지원금을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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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보행약자 체험

- 오은택 구청장 등 1시간여 이동
- 1㎝의 턱도 혼자 오르기 힘들어
- 부산 첫 지원조례 2년 지났지만
- 효과는 미미… 예산 뒷받침 절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에 의지해 길을 가니, 1㎝의 작은 틈만 느껴져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19일 부산 남구장애인복지관 인근 횡단보도에서 오은택 남구청장 등이 보행약자 불편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남구 제공


19일 오후 2시 부산 남구장애인복지관 인근 인도. 시각장애 체험 안경을 끼고 한 손에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를 손에 쥔 오은택 남구청장은 이같이 말하며 진땀을 흘렸다. 이날 남구장애인복지관에서 마련한 ‘명사 초청 보행약자 불편체험’ 행사에서 오 구청장과 국제신문 취재진이 일부 구간은 수동휠체어를 타고, 나머지는 저시력장애 체험 고글을 쓰고 1시간가량 움직였다.

오 구청장과 함께 걸은 남구 장애인복지관 일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았다. 약 50m 구간은 보도블록이 아예 없었고 유엔기념공원 쪽으로 길을 건너면 보도블록 색상이 짙은 회색이라 분간이 힘들었다. 취재진이 안경을 써보니,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상태에서 일반 보도블록과 색깔 구별이 안 돼 발바닥에 느껴지는 요철에만 의지해 갈 수밖에 없었다. 시각장애인 박승범(50) 씨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이 식별하기 쉬운 노란색이 아니라 일반 보도블록 색과 맞춰서 해놨다”며 “그나마 보도블록이 깔려 있어도 존재 자체를 느끼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수동 휠체어를 탄 채 다니는 길은 장애물 투성이었다. 1㎝ 높이의 턱만 있어도 혼자 힘으로 바퀴를 미는 건 역부족이고 경사로처럼 느껴지지 않는 평평한 길도 갑자기 휠체어가 굴러가 바퀴를 잡는 손이 아팠다. 인근 카페 식당 편의점 등에는 경사로가 없어 시원한 물 한 모금 사 마시는 일이 불가능했다.

20일 장애인의 날…“부산에 전문치과 설립을”-‘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부산뇌성마비장애인부모회와 부산시장애인복지관협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남구는 2021년 ‘장애인 등 이동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 지원 조례안’을 부산 최초로 만들어 지난해와 올해 각각 500만 원의 지원금을 편성했다. 하지만 적은 예산과 법적 한계로 조례 제정 2년이 지나도록 장애인 이동권 향상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가게 10곳에 시범 설치된 경사로는 고정식이 아닌 이동식으로, 휠체어 이용자 입장에서는 가게 주인이 직접 설치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다.

장애인은 고정식을 원하지만, 설치하려면 10만 원 이상의 도로점용료를 매년 구에 납부해야 해 현 조례만으로는 상인의 동참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장애인복지관 유경상 관장은 “보행약자를 위해 경사로를 설치한 가게는 도로점용료를 제외하는 등 중장기적 지원과 예산이 뒷받침된다면 장애인 이동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참여연대 등은 이날 오후 부산시청 앞에서 장애인 구강 건강권 보장 확대를 위한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과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에서 중증 장애인의 치과 진료가 가능한 곳은 3곳이지만, 상시 진료가 가능한 곳은 부산대병원 1곳이고 마취 전담의가 상시 인력이 아니라 부산 중증장애인은 기초적인 진료도 두 달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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