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조작’ 보도 폭스뉴스, 개표기 업체에 1조원 배상

이지안 2023. 4. 1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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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이 일어났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일방·지속적으로 보도한 방송사 폭스뉴스가 개표기 업체에 7억8750만달러(약 1조390억원)를 배상하게 됐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투·개표기 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은 18일(현지시간) 폭스뉴스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의 첫 공판에서 폭스뉴스 모회사 폭스코퍼레이션 측과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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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소 첫 공판서 합의
트럼프 주장 인용 음모론 증폭
역대 명예훼손 소송 최고 금액
표현의 자유 신성시하는 美서
언론사 배상책임 인정 이례적
폭스뉴스 경영진 이메일 확보
가짜뉴스 고의성 입증 결정적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이 일어났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일방·지속적으로 보도한 방송사 폭스뉴스가 개표기 업체에 7억8750만달러(약 1조390억원)를 배상하게 됐다. 미 명예훼손 소송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합의금이다. 폭스뉴스는 1·6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까지 촉발한 ‘선거 사기’ 음모론을 확산시킨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됐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투·개표기 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은 18일(현지시간) 폭스뉴스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의 첫 공판에서 폭스뉴스 모회사 폭스코퍼레이션 측과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화로 1조원이 넘는 합의금은 미 언론사 명예훼손 소송 역사상 최고액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합의금은 ABC뉴스의 모기업인 월트디즈니가 가공육 회사에 지불한 1억7700만달러(2346억원)였다고 전했다.

트럼프(왼쪽), 머독.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언론)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미국에서 허위보도에 따른 언론사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NYT는 “(언론 상대) 명예훼손 소송이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소송 요건인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를 충족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1964년 언론사가 허위사실임을 알고도 고의로 이를 보도했다는 것을 원고가 직접 입증해야만 공인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도미니언 측이 이례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폭스뉴스 경영진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메시지 등을 확보해 이들의 고의성을 입증해낸 결과다. NYT에 따르면 뉴스 진행자들은 개표 조작을 주장하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을 “미쳤다”고 조롱하고, “증거가 없다”고 비판하는 메시지 등을 주고받았다. 폭스뉴스의 소유주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역시 트럼프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진은 트럼프 측 주장을 보도하지 않을 경우 다른 친트럼프 성향 언론사에 시청률을 빼앗길 것을 우려해 음모론을 계속 증폭시켰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번 소송을 맡은 델라웨어주 대법원의 에릭 데이비스 판사는 지난해 7월 소송을 각하해달라는 폭스뉴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도미니언 측이 제출한 이런 증거를 토대로 “허위 주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대선 당시 폭스뉴스를 필두로 한 친트럼프 성향 언론사들이 확산한 선거 사기 음모론의 여파는 컸다. 도미니언 등 투·개표기 업체들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개표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기정사실화됐고, 이들이 2021년 1월6일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면서 이를 진압하던 경찰관 1명을 포함해 5명이 숨지는 참사로 이어졌다.

의사당이 유린당한 초유의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의 치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미국은 정치 성향에 따라 극단적 분열을 보이고 있다.

폭스뉴스가 져야 할 책임도 그만큼 커질 전망이다. 폭스뉴스는 또 다른 투·개표기 업체인 스마트매틱으로부터도 같은 내용으로 27억달러 손배소에 휘말려 있다. WP는 “이번(도미니언과) 합의금 액수만 해도 회사가 보유한 현금의 20%에 달한다”며 “폭스뉴스의 경영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인 이지은 변호사는 “언론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하는 미국에서도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일방적 주장을 확산하는 행태에 대해 용인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한국 언론계에도 경종을 울리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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