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경매유예’는 미봉책…집값 하락기 손실확대 어쩌나
대출 금융기관 제2금융권 추정…부실 우려도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의 일환으로 경매 유예를 본격 추진하고 나섰지만 난맥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권의 경매 유예를 이끌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과제인 데다 근본적인 구제책은 더더욱 마땅치 않은 탓이다. 특히 인천 미추홀구처럼 ‘후순위 전세사기’에 해당하는 경우, 선순위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세입자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역전세 규모가 날로 불어나는 상황에서 어디까지를 ‘전세사기’로 보고 구제해줄지도 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다.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로 확인된 2479세대 주택의 경매가 20일부터 유예되도록 은행권과 상호금융권에 협조를 구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금융권에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했다. 원래 금융회사들이 담보권을 제때 행사하지 않아 손실이 나면 금융당국이 제재해야 하지만, 전세사기 관련 대출에 한해 그러지 않겠다는 취지다. 전세사기 관련 여부는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피해 주택 주소 목록을 통해 각 금융회사가 확인한다.
이는 인천 미추홀구 사례처럼 ‘후순위 전세사기’에 해당하는 세입자들을 위해 마련된 대책이다. 금융회사가 경매를 통해 선순위 담보권을 행사하면, 후순위 채권자인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지 못하고 집을 비워야 하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문제는 해당 대출을 취급한 곳이 대부분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들 금융회사 중 일부는 이미 건전성에 ‘노란불’이 켜진 상황이다. 한 예로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새마을금고 전체 1294곳 중 413곳(32%)의 유동성 비율이 100%를 밑돈다. 잔존 만기 3개월 이내인 유동성 자산보다 유동성 부채가 더 많다는 뜻이다.
자칫하면 제2금융권을 둘러싼 불안 심리에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 금융회사가 주담대로 나간 돈을 충분히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직 제2금융권의 전세사기 관련 대출 취급 규모가 얼마인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2금융권의 경우) 돌다리를 두드려 가면서 진행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고금리로 집값 하락 국면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이 경우 집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경매를 진행하는 게 채권자 입장에서는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채권 회수 측면에서는 경매를 유예하는 게 금융회사는 물론 세입자에게도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후순위 전세사기’ 특성상 선순위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구제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난점으로 꼽힌다. 정부가 검토 중인 세입자에게 경매 우선매수권을 주는 방안도 여기에 해당된다.
일부 정치권에서 거론된 공공매입 방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부가 전세사기 관련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차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재원 마련도 문제지만, 국가가 주택을 매입해도 세입자가 아닌 선순위 채권자에게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용하다는 취지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형평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 자산관리공사(캠코)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넘겨받아 채무 조정에 나서는 방안을 거론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집값 하락 국면이 당분간 계속되고 역전세 규모가 계속해서 커진다면, 어디까지 ‘전세사기’로 규정하고 구제해줄지 기준을 정립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필요한 재원의 규모도 안갯속이다. 정부는 아직 전국 단위의 전세사기 규모나 현황 등의 집계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 차원에서 파악 가능한 전세사기 통계는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에 가입했다가 사고가 난 경우뿐”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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