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들 설치는 부동산 시장…도박판 만한 규율도 없나
[기고]
[기고] 안재환ㅣ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영화 <타짜>에는 도박판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자의 손목을 자르려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에서는 도박과 신체를 해하는 행위 모두 불법이지만, 도박판에도 규칙 위반에 대한 벌칙이 존재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법적인 도박판과 달리, 주식시장은 정부가 설립한 국가기관이 시장의 규율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법은 주가에 인위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시세조종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또 이를 적발하기 위해 한국거래소는 주식시장의 이상 거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이상 거래가 확인되면 조사나 수사에 나선다.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면 검찰은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에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당사자에게는 징역 5년 이상(이익액 50억원 이상) 등 중형이 선고된다. 여기에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는 주식시장의 불공정 행위에 부과하는 과징금을 상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런 모든 규율은 선량한 투자자가 시장에 진입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은 어떤가? 우리 부동산시장은 미래세대가 안심하고 가정을 꾸릴 터전을 제공하고 있는가?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부동산시장에는 선량한 거래자를 보호할 규율이 크게 부족했다. 특수관계자들이 매매가격을 높여 신고한 뒤 이를 사후에 취소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하고, 대단지 아파트 거주자들이 특정 가격 이하로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짬짜미(담합)해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행위는 주식시장, 심지어 불법적인 도박판에서조차 엄격히 규율되지만,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부동산시장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시장의 중요성이 주식시장과 비교해 절대 낮지 않고, 이런 부동산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사실상 방기에 가까운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왔다. 여기에 언론은 투자자들에게 전국의 저가 아파트와 빌라를 찍어주며 주거 사다리의 가장 아래 단에 있는 이들의 생존 터전조차 투기판이 되도록 일조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2021년 이후 아파트 계약을 체결한 뒤 해지한 2099건을 조사해, 집값을 띄우기 위해 허위로 매매 신고한 사례가 확인되면 최고 3천만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만시지탄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을 수억원씩 상승시켜 다수의 부동산에서 이익을 본 자들에게 이 정도의 처벌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부동산시장은 통화정책으로부터도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물가상승 지표의 하나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부동산 가격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수의 주거비용에 전·월세 가격이 포함돼 있지만, 집값 움직임을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몇만원 오르는 전기요금 동향에는 민감한 통화당국이 수억원씩 오르는 집값 동향에는 둔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광풍이 지나자 부동산 거래 관련 금융, 세제, 분양 규제는 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코로나 대유행 기간 중 부동산 가격 상승이 국제적인 유동성 과잉 때문이라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거품 낀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피해야 한다며 특례보금자리론 39조원을 투입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정책금융 28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는 최소한의 거래량 유지와 경제적 파국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대적인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가 언젠가 다시 지난날의 투기 광풍을 재연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정부는 이제라도 부동산시장 거래 규율을 최소한 주식시장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강화해야 한다.
최근 잇따른 전세대출 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에서 볼 수 있듯이, 규율이 없는 시장에 대출을 확대하면 선량한 국민이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언론 또한 서민 주거안정에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투기꾼들이 시장을 교란하면 집 없는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까지 미래 부채를 부담해야 한다. 이런 속에서 결혼이나 출산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에 공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을 책임질 젊은 세대의 미래 또한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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