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려던 도서관장을 징계하겠다고?

정유경 2023. 4. 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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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소년들이 보고 싶은 책들과 마포에 있는 출판사들이 낸 책을 진열해둔 마포중앙도서관 열람실. <한겨레> 자료사진

[편집국에서] 정유경 | 뉴스서비스부장

어린 시절 인구 20만 남짓 지방 소도시에 살았다. 초등학교 뒤 산동네엔 판잣집들이 많았다. 비가 오면 아랫동네에 있는 우리 집 골목은 물에 잠겼고, 반에 한둘쯤은 으레 화상 자국이 있었다. 일찍 홀로 어른이 된 아이들이 라면 물을 올리거나 연탄을 갈다가 얻는 흔적이었다. 도서실 책을 가장 많이 읽어 전교 독서왕 상을 탔던 친구도 그랬다. 그는 할머니·동생과 셋이 살았다. 운동회 때 김밥은 다 같이 나눠 먹어도, 응원가로 ‘피구왕 통키’ 주제가를 부를 줄 아는 아이와 모르는 아이가 갈렸던 시절이었다. 유선방송 케이블이 연결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나 <에스비에스>(SBS)를 볼 수 있었다.

심심한 아이들은 주말 아침이면 으레 약속한 듯 시립도서관에 모이곤 했다. 그 무렵 시립도서관에 아동열람실이 생겼다. 서가를 꽉 채운 책 모두가 우리 것이었다. 중국 신화에서 열개의 태양을 떨어뜨린 전설적인 궁수 예 이야기도,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 루슬란과 류드밀라나 샤쿤탈라의 반지 이야기도 책에서 배웠다. 가끔은 나무 신문철에 묶인 신문을 뒤적이는 어른들 틈을 기웃대기도 했다. 도서관 식당엔 정수기도 있어서 컵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일 필요가 없었다. 비빔밥도, 율무차도 저렴했다. ‘방방이’(트램펄린) 장수도 도서관 앞에 자리를 폈다. 안팎으로 순찰을 도는 어른들이 있었기에 무섭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키즈 카페’ 같은 존재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시내 두곳뿐인 서점에서 책을 사 주는 부모님이 있었고, 서울로 대학도 갔다. 하지만 악기 하나쯤은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고 각종 공연을 섭렵하며 자란 친구와 학교 음악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클래식 한토막씩 무작정 외우며 자란 나의 ‘문화자본’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대신 도서관은 언제든 갈 수 있었다. 대학 도서관은 장서 수가 많기로 손꼽혔고, 학술 논문도 무료로 찾아볼 수 있었다. 잠시 영국에 연수차 머물렀을 때, 요크도서관은 카드 한장만 발급받으면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책은 물론 음반 시디(CD)까지 빌려줘 놀랐다. 비록 내 음악 탐닉은 그룹 아바(ABBA) 수준에서 끝났지만 말이다. 당시 흔치 않았던 무선인터넷도 쓸 수 있어 주머니 가벼운 유학생에게 요긴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사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열렸다. 도서관은 시골뜨기도, 이방인도 환영받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전셋집을 구할 때 유치원 셔틀이 오는지 다음으로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 알아보곤 했다.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과 도서관에서 만나 넌지시 웃음 인사를 나눴고, 각종 프로그램을 살펴보다 이미 신청 마감된 사실을 알고 아쉬워하곤 했다.

그런 동네 도서관이 위태롭다. 서울 마포구는 도서관 예산 삭감안에 이의를 제기했던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을 지난 7일부로 직위해제하고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앞서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지난해 11월 관내 도서관 예산을 30% 삭감하고 ‘작은도서관’을 사실상 폐관하겠다고 밝혀 구민들의 반발을 샀다. 송 도서관장 징계 사유로 “성실·복종·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거론되고 있다는데, 도서관장이 도서관 예산 삭감에 반대한 게 어째서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사실상 보복성 조치 아니겠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도서관 예산이 깎인 지방자치단체는 마포구뿐이 아니다. 대구광역시는 올해 작은도서관 지원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서울 영등포구도 도서관 발전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서울시도 올해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실이 올해 초 알려졌다. 언론 보도로 여론이 악화하면 화들짝 물러서는 척하며 “추경 때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미루는 레퍼토리도 반복된다. 관련 소식을 전한 <한겨레> 기사들엔 “구청 회식비를 삭감하더라도 도서관 예산은 삭감하면 안 된다”(gyl2****), “홍대 앞 바닥에 빨간 도로를 깔아댄 건 당연한 건가. 없는 예산을 만들어서라도 도서관 예산은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iaml****)는 성난 댓글이 넘실댄다. 같은 마음으로 묻고 싶다. 도서관이 흑자를 내야 하는 사업인가? 우리는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나 책을 볼 수 있게 할 의무가 있다.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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