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천원의 아침밥, 준비하는 이들의 손길도 기억을
김민화 | 경희대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사무국장
대학생활협동조합은 사람들의 결합체이며 또한 사업체다. 대학을 구성하는 교수, 직원, 대학(원)생이 자신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대학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으니 사람들의 결합체다. 또 모인 사람들이 학내 생활에 필요한 식당, 서점, 문구점, 커피점, 기념품점, 자동판매기 등 여러 매장에서 사업을 하니 사업체다. 나는 이 두가지 업무를 위해 채용된 실무책임자다.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는 많은 직종에 영향을 미쳤지만, 대학에서 매장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더 가혹하고 혹독했다. 학생들로 활기찼던 대학 교정은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적막하기 그지없었으며, 이용자 없는 매장 운영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됐다. 연간 76억원 매출을 올렸던 사업은 2020년 17억원, 2021년 2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직원들은 유·무급 휴업으로 버텼으며, 일부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 이직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소상공인 지원도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개별 매장 매출로는 소상공인이지만 전체가 한개 사업자등록증으로 운영되다 보니 소상공인이 아니란다. 학교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구성원이 나오지 않는 학교에서 직원들의 ‘생존’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조합원 모집 또한 쉽지 않았다. 모든 수업과 회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학생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이유도 관심도 없었다. 우리 대학의 경우 조합원에게는 매장 이용액의 일부를 환원하는 제도로 일종의 포인트 개념인 ‘이용고 배당’을 하는데, 아예 학교에 오지 않으니 설명할 방법도 권유할 방법도 없었다. 겨우 할 수 있는 게 대학 교과서와 기념품을 온라인몰로 만들어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학식, 매점 상품은 온라인 판매로 적합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신선도가 생명인 음식을 부산까지 배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인(조합원) 없는 조합에 직원만 남아 생존할 수 있을까? 생협을 정리해야 할까 고민하던 기간이 2020년 1학기부터 2022년 1학기까지 5학기를 채웠다. 드디어 2022년 2학기부터 대면 수업이 결정됐고, 학생들이 다시 교정을 찾았다. 매장을 재개점하기 위해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채우는 채용을 진행했으나, 모든 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학생식당에서 일하실 분들을 채용하는 게 어려웠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학생들은 우리 사정을 잘 모르는 채 불편한 사항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어 안타깝다.
대면 수업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교정에서 학생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업이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다. 천원의 아침밥은 국가와 대학의 지원으로 학생 본인은 1천원만 부담하여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하루 100명분의 천원의 아침밥을 준비했다. 그러나 100명분 식사는 8시 개점과 동시에 20분도 채 되지 않아 매진됐고,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이 있어 지금은 130명분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또한 8시40분이면 매진된다. 그러나 연간 제공할 수 있는 식수가 1만2600식으로 제한돼 있어 마냥 늘릴 수만은 없는 사정이다. 현재 우리 대학을 포함해 41개 대학이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참여 중인데, 정부에서 전국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한다고 한다.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점심, 저녁까지도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사업을 기획하고 이용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8시에 아침식사를 제공하려면 최소한 네분의 노동자가 6시에는 출근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따뜻한 아침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린다. 아침식사뿐 아니라 점심, 저녁까지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환영하나 이 경우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어떻게 될까도 함께 고민하면서 정책이 수립되길 바란다.
지난 3월 말, 대학생협 1년 사업을 계획하고 이를 운영할 임원진을 선출하는 20기 대의원총회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중단된 학생 이삿짐 운반 사업인 ‘짐캐리’, 명절 귀향·귀경버스 운행, 장학금 확대, 우산·천막·테이블 등 물품 대여와 천원의 아침밥 사업 등등 우리 생협의 주인인 조합원 복지 향상 방안이 논의되고 결정됐다.
우리는 다시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하지만 대학생협 처지에서는 2년6개월 동안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의 파도를 헤쳐나가기 위해 탑승한 배는 같은 배가 아니었다. 대학생협은 파손된 배를 겨우겨우 붙잡고 있었으며, 생협 직원들은 나뭇조각에 의존했던 것 같다. 다시 걸음마를 떼는 대학생협 직원들에게 응원을 바란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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